뉴스가 된 詩

[스크랩] [고영민] 앵두

문근영 2012. 5. 1. 21:22

 

 

앵두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 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부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 웹진『문장』(200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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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두라는 단어는 앵두를 닮았다. 빨갛고 탱탱하고 동글동글한 앵두. ‘빨간 화이바’도 앵두를 닮아 생생하고 탱탱하다. ‘빨간 화이바’를 쓰고 그녀가 오니 앵두가 오는 것이고 싱싱한 그녀의 생명이 오는 것이다. 부릉거리는 스쿠터 소리조차 조르는 듯 투정을 부리는 듯 넘치는 애교로 그녀를 바라보는 이의 몸에도 충만감을 불어넣어준다. 가랑이를 오므리고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운 섹시한 그녀. 인간이 만든 파이버, 인간이 만든 백미러, 이것들이 앵두나 기린의 귀를 닮아 자연의 모습을 흉내 내며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아름다운 자세를 보면 괜히 행복해진다. 오늘은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풀 많은 내 마당으로 쒱 달려온 그녀와 사랑을 나누게도 될 것이다.

  최정례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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