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독서
한이나
바람이 부드러운 해거름 무렵
나는 걷는 독서를 한다
히잡을 쓴 열다섯 살 소녀 누비아가 되어
당나귀에게 풀을 먹이며
밀밭 사이로 얇고 깊게 스며든다
낭송하는 소리들이 경치를 이룬다
흙의 향기와 밀의 수런거림과 새의 지저귐이
책에서 줄맞춰 뛰어 나온다
하루의 끝을 짚으며
나를 밀어내고 들어앉은 남이 나로 바뀔때까지
무거운 책 속의 다른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내 몸의 아픔도 잊고 밀밭 사이로 걷는 독서,
나는 나다
저 진흙세상에서 마악 빠져나온,
- 『뜸』. 시천지 동인시집.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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