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궁 (외 2편)
이은무 李殷武
과녁은 허무다
팽팽한 삶의 줄을 힘껏 당긴다
순간 놓는다
또 명중하는 하루,
마치 살을 맞고
노을로 쓰러지는 아픔이
저토록 그지없이 아름다운 것은
그 화살촉이 순금인 것을,
아무도 모르게
나는.
시인의 저울
낚시를 하다가
무료한 저울로 지구를 달아본다
조막만한 요 돌멩이도
요렇게 묵직한데, 하물며 알 수 없는 그 무게로
아주 가볍게
아주 아름답게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별, 지구를
눈금이 없는 내 저울로 달고 있을 때
어느 과원에서
잘 익은 능금 하나
저울 밖으로 떨어지는가
레테 강에서 낚시를
기다리는 것은, 무얼
끝내 부질없이 흩어진 내가 나를
주섬주섬 챙긴다.
낚시나 가야겠다.
삶과 죽음이 섞여
성스러운 물로 싱겁게 흐르는 강
갠지스 강으로 왔는데, 아 그런데 말이야
어디선가 꼭 구면 같은
뱃사공 카론이 나를 반기는 군.
비통의 강 아케론에선 벌이가 시원치 않아
이리로 왔다면서 바닥이 없는 소가죽배로 나를 태우며
공짜는 누구든 절대 없는 그가
최초로 나를 공으로 태워준다나
흥, 이런 낚싯배도 있었군, 중얼거리는데
시름의 강 코퀴토스나 불의 강 플레게톤을 거치지 않고
직항으로 레테의 강에 이른다며
거길 가야만
망각의 대어들을 낚을 수 있어
짜릿한 허무의 손맛을 움켜쥘 수 있다고
카론이 노를 저으며 웃는다.
—시집『명궁』(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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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무 / 1940년 강원도 홍천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낮은 소리로』『生의 갈피에서』『핏줄』『밤똥』『神의 셋방에서』『모닥불』『태양초』『랑리아』『하얀 거짓말』『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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