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이은무 시집 『명궁』- 명궁 외 2편

문근영 2018. 12. 20. 02:25

명궁 (외 2편)

 

   이은무 李殷武

 

 

 

 

과녁은 허무다

 

팽팽한 삶의 줄을 힘껏 당긴다

 

순간 놓는다

 

또 명중하는 하루,

 

마치 살을 맞고

노을로 쓰러지는 아픔이

저토록 그지없이 아름다운 것은

그 화살촉이 순금인 것을,

아무도 모르게

나는.

 

 

 

시인의 저울

 

 

 

낚시를 하다가

무료한 저울로 지구를 달아본다

조막만한 요 돌멩이도

요렇게 묵직한데, 하물며 알 수 없는 그 무게로

아주 가볍게

아주 아름답게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별, 지구를

눈금이 없는 내 저울로 달고 있을 때

어느 과원에서

잘 익은 능금 하나

저울 밖으로 떨어지는가

 

 

 

레테 강에서 낚시를

 

 

 

기다리는 것은, 무얼

끝내 부질없이 흩어진 내가 나를

주섬주섬 챙긴다.

 

낚시나 가야겠다.

 

삶과 죽음이 섞여

성스러운 물로 싱겁게 흐르는 강

갠지스 강으로 왔는데, 아 그런데 말이야

어디선가 꼭 구면 같은

뱃사공 카론이 나를 반기는 군.

비통의 강 아케론에선 벌이가 시원치 않아

이리로 왔다면서 바닥이 없는 소가죽배로 나를 태우며

공짜는 누구든 절대 없는 그가

최초로 나를 공으로 태워준다나

 

흥, 이런 낚싯배도 있었군, 중얼거리는데

시름의 강 코퀴토스나 불의 강 플레게톤을 거치지 않고

직항으로 레테의 강에 이른다며

거길 가야만

망각의 대어들을 낚을 수 있어

짜릿한 허무의 손맛을 움켜쥘 수 있다고

카론이 노를 저으며 웃는다.

 

 

 

                       —시집『명궁』(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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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무 / 1940년 강원도 홍천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낮은 소리로』『生의 갈피에서』『핏줄』『밤똥』『神의 셋방에서』『모닥불』『태양초』『랑리아』『하얀 거짓말』『거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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