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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지소 시집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질투 수업 외 2편

문근영 2018. 12. 20. 02:26

질투 수업(외 2편)

 

   유지소

 

 

 

오늘도 사각 타일을 질투합시다

이렇게 매끄럽고 이렇게 희고 이렇게 반듯한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오 분마다 질투합시다

 

빚쟁이가 오 분에 한 번씩 전화벨을 울려 대는 것처럼

붕어빵 틀이 오 분에 한 마리씩 붕어빵을 구워 내는 것처럼

 

사각 타일은 사각 타일끼리 모여서

겨우 화장실 벽이거나

겨우 화장실 바닥입니다

 

사각 타일과 사각 타일 사이에 꽃피는 것은

겨우 까만 물때이거나 까만 곰팡이입니다

 

우리가 물방울이라면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처럼

따로따로

방울방울

흩어져서 질투합시다

 

물방울은 물방울끼리 모여도 여전히 물방울입니다

 

그의 두 뺨에 두 가슴에 두 거기에

맺히면서

구르면서

흘러내리면서 끝끝내 얼룩을 남기면서 질투합시다

 

이렇게 한결같고 이렇게 평화롭고 이렇게 속없는 사람

또 없습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으로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으로

오늘도

전투적으로!

마지막 질투를 개발합시다

 

오 분 후에 사라질 거품이

거품 위에 거품을 물고 엎어지는 것처럼

오 분 후에 죽을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담배를 꼬나무는 것처럼

 

 

 

그 해변

 

 

 

그 해변에서는 가벼운 화재도 사소한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살아 있는 사람이 도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 해변은 지루해서 지루해서 지루해서 작은 모래알은 더 작은 모래알을 질투하는 것이다 더 작은 모래알보다 더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작아지려고 자꾸 발끝을 벼랑 위에 세우는 것이다 벼랑이 먼저 무너지는 것이다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가 넘어지는 것이다 그 해변은 그렇게 더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가까이 세계의 끝으로 다가가고야 마는 것이다

 

 

 

이런, 뭣 같은!

 

 

 

막걸리 사러 오복슈퍼 가는 길

검은 슬리퍼가 찰싹

찰싹 세상의 따귀를 때리며 걸어간다

직장도 찰싹

애인도 찰싹

약속도 찰싹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카펫처럼 찰싹 애도처럼 찰싹 끝없이 정중하게

이렇게 눈부신 찰싹 이렇게 고요한 찰싹

이 세상의 따귀를 찰싹

찰싹 후려치며 걸어간다

 

이런바퀴벌레절편같은이런똥걸레구절판같은

이런시궁쥐통조림같은

 

모닝헤어디자인 모퉁이 돌아갈 때 찰싹

<무료로!!!행복을커트해드립니다> 찰싹

바람벽에 막 내걸리고

다 찰싹

오복 중의 복 하나가 또 죽어 나가겠군 찰싹

다 그런 거지 뭐 찰싹

승리기원 멸치 대가리만한 쪽창 속으로 찰싹

희멀건 태양이

막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개뼈다귀댄스같은

이런알쭈꾸미안경같은이런똥궁둥이고약같은

 

오복슈퍼에 막걸리 사러 가는 길 얼씨구

검은 슬리퍼가 내 발바닥을 찰싹

찰싹 후려치며 웃는다

눈물도 찰싹

웃음도 찰싹

희망도 찰싹

하룻밤 한잔 술에 다 말아먹은

너는 누구냐? 찰싹

티눈처럼 찰싹 얼룩처럼 찰싹

발바닥에 몰래 숨겨 놓은 나의 낯바닥을 얼씨구

찰싹찰싹 후려치며 웃는다

 

이런썩은동태가운데토막같은이런돼지발싸개같은

 

이런

너 같은

 

  

                       —시집『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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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소 / 1962년 경북 상주 출생. 2002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제4번 방』『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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