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란 어떤 물건인가?
자네 우선 거기에 앉게. 내가 자네에게 말해 주겠네. 문장이란 무슨 물건일까? 학식은 안으로 쌓이고, 문장은 겉으로 펴는 것일세.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살가죽에 윤기가 나고, 술을 마시면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그러니 어찌 문장만 따로 쳐서 취할 수가 있겠는가? 중화(中和)의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우(孝友)의 행실로 성품을 다스려, 몸가짐을 공경히 하고, 성실로 일관하되, 중용을 갖춰 변함없이 노력하여 도를 우러러야 하네. 사서를 내 몸에 깃들게 하고, 육경으로 내 식견을 넓히며, 여러 사서(史書)로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게 해야겠지.
예악형정의 도구와 전장법도의 전고(典故)가 가슴 속에 빼곡하여, 사물이나 일과 만나 시비가 맞붙고 이해가 서로 드러나게 되면, 내가 마음 속에 자옥하게 쌓아둔 것이 큰 바다가 넘치듯 넘실거려 한바탕 세상에 내 놓아 천하 만세의 장관이 되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네.
그 형세를 능히 가로막을 수 없게 되면 내가 드러내려 했던 것을 한바탕 토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네. 이를 본 사람들이 서로들 ‘문장이다’라고들 하니, 이런 것을 일러 문장이라 하는 것일세. 어찌 풀을 뽑고 바람을 우러르며 빠르게 내달려, 이른바 문장이란 것만을 구하여 붙들어 삼킬 수가 있겠는가? -<이인영을 위해 준 글[爲李仁榮贈言]〉7-306
余曰噫嘻子坐. 吾語子. 夫文章何物? 學識之積於中, 而文章之發於外也. 猶膏梁之飽於腸, 而光澤發於膚革也, 猶酒醪之灌於肚, 而紅潮發於顏面也. 惡可以襲而取之乎? 養心以和中之德, 繕性以孝友之行, 敬以持之, 誠以貫之, 庸而不變, 勉勉望道. 以四書居吾之身, 以六經廣吾之識, 以諸史達古今之變, 禮樂刑政之具, 典章法度之故, 森羅胸次之中, 而與物相遇, 與事相値, 與是非相觸, 與利害相形, 卽吾之所蓄積壹鬱於中者, 洋溢動盪, 思欲一出於世, 爲天下萬世之觀. 而其勢有弗能以遏之, 則我不得不一吐其所欲出. 而人之見之者相謂曰文章, 斯之謂文章. 安有撥草瞻風, 疾奔急走, 求所謂文章者, 而捉之吞之乎?
젊은이! 훌륭한 문장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가? 내가 그 비법을 알려주겠네.
세상에 글쓰기 공부만 해서 훌륭한 문장가가 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네.
술 먹으면 얼굴이 불콰해지는 것은 뱃속에 든 술기운이 얼굴에 올라온 것일세.
글도 마찬가지라네. 문자로 표현되는 것은 내 속에 품은 생각일 뿐, 문자 자체는 아닌 것이지.
사람들은 늘 이 점을 혼동한다네. 문장 수련만 열심히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지. 연역법과 귀납법을 배우고, 비교와 대조, 묘사와 서사의 기교를 열심히 배워본들, 글쓰기는 늘지를 않는다네. 내 속에 든 것이 없으면 덜그럭거리는 빈 수레일 뿐인 것을. 자네 좋은 글을 쓰고 싶은가? 무엇보다 먼저 사람 되는 공부를 하게. 수양을 통해 덕성을 쌓고, 학문으로 시비를 판단하는 역량을 기르게. 하나하나 가슴 속에 온축해 두고, 어떤 상황과 만나 도저히 한바탕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거든 그때 붓을 들어 글로 쓰게.
그걸 보고 깜짝 놀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장이다!’라고 말할 걸세.
사람 되는 공부에 앞서 문장만 따로 이루고 싶다고?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세상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