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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79. 돌길로 가지 말라

문근영 2018. 7. 19. 02:18


[다산어록청상] 79. 돌길로 가지 말라


▼ 그림: 조반니 볼디니 (Giovanni Boldini) 1842~1931 이탈리아 출생
 "Elizabeth Drexel" .
     

    돌길로 가지 말라



    글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과문(科文)이 가장 어렵고, 이문(吏文)이 그 다음이다. 고문(古文)은 쉽다. 그러나 고문의 지름길을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이문이나 과문은 따로 애쓰지 않아도 파죽지세와 같다.

     

    과문을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벼슬하여 관리가 되어도 공문서 작성에 모두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 서문이나 기문, 혹은 비명(碑銘)의 글을 지어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몇 글자 쓰지도 않아서 이미 추하고 졸렬한 형상이 다 드러나 버린다. 이로 볼 때 과문이 정말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는 방법이 잘못 되었을 뿐이다.

     

    내가 예전 아들 학연에게 과시를 가르쳤었다. 먼저 한위(漢魏)의 고시부터 하나하나 모의하게 하고나서 점차 소동파나 황산곡의 문로를 알게 했다. 그랬더니 수법이 점점 매끄러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과시 한 수를 짓게 했더니, 첫 번째 작품에서 이미 여러 선생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 뒤로 남을 가르칠 때도 이 방법을 썼더니 학연과 같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가을이 깊으면 열매가 떨어지고, 물이 흐르면 도랑이 이루어짐은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제생들은 반드시 가기 쉬운 지름길을 찾아서 갈 것이요, 가기 어려운 울퉁불퉁한 돌길이나 뒤얽힌 길을 향하여 가지 말라.  -〈다산의 제생을 위해 준 말[爲茶山諸生贈言]〉 8-7


    文有多種. 而科文最難, 吏文次之, 古文其易者也. 然自古文蹊徑入頭者, 卽吏文科文不復用功, 勢如破竹. 自科文入頭者, 仕而爲吏, 判牒皆藉人手. 有求序記碑銘者, 不數字已醜拙畢露. 由是觀之, 非科文之果難, 而爲之失其道爾. 余昔敎子淵科詩, 先從漢魏古詩, 寸寸摸擬, 漸識蘇黃門路, 覺手法稍滑. 令作科詩一首, 初篇已被諸先生獎詡. 後來敎人用此法, 無不如淵也者. 秋熟子落, 水到渠成, 理所然也. 諸生須求捷徑去, 勿向犖确藤蔓中去.


    빨리 가는 길이 지름길이 아니다. 돌아가는 지름길이 진짜 지름길이다. 당장에는 빨라 보여도 아무 성취가 없는 것은 지름길이 아니라 돌길이다. 사람은 바른 길로 가야지 곁길로 새면 안 된다. 곁길은 늘 빨라 보이지만 결국은 뒤얽혀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든다. 과문은 과거 시험장에서 쓰는 글이다. 실용과는 거리가 있다.

     

    이문(吏文)은 아전들이 행정 실무에 쓰는 실용문이다. 요령만 있으면 된다. 고문은 삶의 지혜가 담긴 말씀이다. 배우기는 고문이 가장 쉽다. 과거공부를 하는 사람은 과문만 공부한다. 고문을 공부하라고 하면 시험에 안 나오는데 왜 하느냐고 되묻는다. 고문을 열심히 익히면 과문은 저절로 잘 써진다. 과문에만 힘 쏟으면 고문도 안 되고 과문도 안 된다.

     

    글은 테크닉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쓴다. 테크닉을 아무리 익혀도 정신의 뒷받침이 없이는 한 줄도 쓸 수가 없다. 과문을 배우는 지름길은 고문을 천천히 익히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생각의 힘을 길러라. 글쓰기의 기술과 잔재주를 익히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기본기를 충실히 닦아라.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 온다.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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