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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75. 시의 마음

문근영 2018. 7. 15. 01:24


[다산어록청상] 75. 시의 마음



      시의 마음

음악을 연주하는 자는 금속악기로 시작해서, 마칠 때는 소리를 올려 떨친다. 순수하게 나가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마침내 화합을 이룬다. 이렇게 해서 악장이 이루어진다. 하늘은 1년을 한 악장으로 삼는다. 처음에는 싹트고 번성하며 곱고도 어여뻐 온갖 꽃이 향기롭다. 마칠 때가 되면 곱게 물들이고 단장한 듯 색칠하여 붉은 색과 노란 색, 자줏빛과 초록빛을 띤다. 너울너울 어지러운 빛이 사람의 눈에 환하게 비친다. 그리고 나서는 거둬들여 이를 간직한다. 그 능함을 드러내고 그 묘함을 빛내려는 까닭이다. 만약 가을바람이 한 차례 불어오자 쓸쓸해져서 다시 떨쳐 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텅 비어 떨어진다면, 그래도 이것을 악장을 이루었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산에 산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매번 단풍철을 만나면 문득 술을 갖추고 시를 지으며 하루를 즐겼다. 진실로 또한 한 곡이 끝나는 연주에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가을은 농사가 큰 흉년이라 놀러갈 마음이 없었다. 다만 다산의 주인과 함께 백련사에 가는 것으로 예전의 예를 보존하였다. 두 집안의 자질들이 따라왔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각각 시를 한편씩 짓고 두루마리에다 썼다. 이때는 가경 14년(1809) 기사년 상강(霜降) 후 3일이다. -〈백련사에 노닐면서 단풍잎을 구경하고 지은 시의 서[游蓮社觀紅葉詩序]〉 6-95 


 

奏樂者始作金聲之, 及終上振之, 純如繹如翕如也. 於是乎章成. 天以一歲爲一章. 其始也, 旉蕃妍豔, 百華芬郁. 及其終也, 縇染糚塗, 爲之朱黃紫綠, 洋洋之亂, 照耀人目而後, 收而藏之. 所以顯其能而光其妙也. 若使商飆一動, 蕭蕭然不復振發. 一朝廓然隕落, 其尙曰成章云乎哉. 余山居數年, 每遇紅樹之時, 輒具酒爲詩, 以歡一日. 誠亦有感於曲終之奏也. 今年秋, 農事大無, 無意游衍, 唯與茶山主人, 相携至白蓮之社, 以存舊例. 兩家子姪從焉, 酒旣行, 各爲詩一篇, 書諸卷. 時嘉慶十四年己巳霜降後三日.


한곡의 음악에도 시작이 있고, 절정이 있고, 대단원이 있다. 처음엔 느직이 해맑은 가락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호흡이 거칠어졌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여러 악기가 일제히 제 소리를 내며 밀고 당기는 드잡이질을 한다. 마침내 최고조에 달하여 듣는 숨이 가빠질 때면 슬며시 여운을 남기며 소리를 거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도 조물주가 내려준 4악장의 교향악이다. 꽁꽁 언 대지를 녹이며 꽃들이 피어난다. 세상은 경이로 가득차서 믿지 못할 눈앞의 기적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꽃 진 자리에 새잎이 나고, 연두색이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면서 사물이 자란다. 그 따가운 볕에 열매는 익어 고개를 숙인다. 단풍은 대지 위에 온통 알록달록한 비단을 펼쳐 놓았다. 어느 틈에 나무들은 두 팔을 높이 쳐들고 빈손으로 예배를 올린다. 다시 찬바람이 낙엽을 쓸어 간다. 정결한 대지 위엔 흰 눈이 덮여 편안한 안식의 자리를 마련한다. 시의 눈, 문학의 마음은 이런 대지의 노래, 조물주가 들려주는 악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감사와 찬미의 눈길로 고마움에 화답하고 그것을 노래하여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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