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양파를 위한 찬미가
강은교
저녁에 양파는 자라납니다
푸른 세포들이 이슥히 등불을 익히고 있습니다
여행에 둘러싸인 창틀들, 웅얼대는 벽들
어둠을 횡단하며 양파는 자라납니다
그리운 지층을 향하여 움칫움칫
사랑하는 고생대를 향하여 갈색 순모 외투를 흔듭니다
저녁에 양파는 자라납니다
움칫움칫 걸어 나오는 싹
시들며 아기를 낳는
달빛 아래 그리운 사랑들
애인들이 푸른 까치발로 별을 따는
한 사내가 이슬진 길을 떠메고 푸른 골목 속으로 사라지는
푸른 눈꺼풀들이 창문마다 돛을 서걱이고 있는, 또는 닻을 펄럭이고 있는
—《시인수첩》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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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사상계》등단. 시집『허무집』『풀잎』『빈자 일기』『소리집』『등불 하나가 걸어오네』『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초록 거미의 사랑』『네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바리연가집』등. 현재 동아대 명예교수.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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