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찌푸림 / 성향숙

문근영 2018. 3. 17. 10:08

찌푸림

 

  성향숙

 

 

 

정오의 태양을 향한 편견,

구겨진 종이,

금간 유리창,

달라진 체온,

빛나는 얼굴에서 타인의 절망에 익숙한 원형

 

문 열면 시린 눈에서 층발하는 푸른 하늘과

스며들지 못하는 풍경의 신생들

눈을 뜰 수가 없다

 

낮잠은 잤나요?

이번 달 생리통은 있었나요?

수면제를 복용하나요?

 

그러니까

아름다운 노을은 고도의 먼지를 통과하는 것일 뿐

애초 붉은 색은 없다는 것

현대백화점 앞 태양의 뺨을 후려치는 여자와

담장 쪽으로 꽃을 토하고 사라진 남자와

너의 또 다른 욕망을 들킨 것

 

햇살이 네 얼굴에 뿌리는 소나기 같은 것

죽은 슬픔이 삐져나오는 것

 

문을 닫으면 비명을 내지르는 어둠이 있다

 

꼭 감은 눈에 붉은 색이 기울어지는 석양

입술에 노란 해바라기 압정

 

다시 문을 열면 질겅거리는 염소가 있다

눈 못 뜨는 고양이가 있다

 

 

 

                         —《시와 세계》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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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숙 / 경기도 화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농민신문〉신춘문예 당선, 2008년 《시와 반시》신인상 당선. 시집『엄마, 엄마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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