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배용제
휘파람을 불며 걸어볼까
이 세계가 내팽개친 새끼 고양이를 쓰레기봉투에 넣고
다산콜 센터에 전화를 걸고
곧 소나기가 올 것 같아, 중얼거리며
섬세하게 자라나는 벽들 사이를 지나
거리의 확고한 신념들을 지나
두리번거리는 여자에게 고향을 묻는 건 실례일까
당신이 몇 번째 등장인물인지 아십니까?
아니야, 다만 오늘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사라졌을 뿐이야
어느 하루든 누군가는 사라지거든
약간의 논쟁을 피하기 위해
우리의 이해력은 빠르게 진화한다
벽들은 지칠 때까지 자라나고
이 도시의 이정표들은 모두 사라지는 방향을 제시한다
알 수 없는 멜로디를 내뱉는 휘파람
누군가는 이해하겠지, 어차피 의미 없는 겸손함으로
조금은 방향을 잃고 헤매어볼까
이 세계의 모든 길에선 누군가 방향을 잃고
이해력이 참 빠른 우리들 곁에서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두리번거리겠지
—《딩아돌하》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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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제 /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97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삼류극장에서의 한때』『이 달콤한 감각』『다정』.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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