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신발을 잃다 / 이화영

문근영 2017. 10. 31. 12:44

신발을 잃다

 

   이화영

 

 

 

무딘 하루를

어느 방향으로도 벼르지 못했다

잃어버린 지도를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지도라는 발성에는 바람이 있다

 

내일은 신발 끈을 매고

바람 우는 소리를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신발을 잃은 날이 기억나지 않았다

 

안개와 연기는 마약 같다

밤이 길어지는 시각

기별 없이 떠난 당신을

부드럽고 슬픈 사내라고 기록했다

말라비틀어진 옥수숫대를 건너

무리지어 비틀대는 밤안개를 보면서

사라지고 흩어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늦더위를 지르는 바람이

시가 되지 않는 자판기를 잠식했다

당신 이야기는 야위어가고

낡은 신발에 대한 이야기는 부풀어 올랐다

신발에 대한 기억이 유독(幽獨)하다

 

 

                        —《현대시》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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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 / 전북 군산 출생. 2009년《정신과 표현》으로 등단. 시집 『침향(沈香)』『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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