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장이지
고백이란 제도에 어서 오세요.
여기서는 진실만을 말하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마지막엔 강물 위로
비어 있는 죽음을 띄우는 것을.
이를테면 죽은 채로 되돌아오는 아도니스 인형을,
시체의 의식을.
눈물의 유속(流速)을 계산하는 걸 잊지 마세요.
고백이란 회사에 어서 오세요.
연분홍 치마에 어서 오세요.
'문학소녀가 이렇게 예쁠 리 없어'에 어서 오세요.
'알바 하는 문단 아이돌'에 어서 오세요.
시와 음악이 있는 문학콘서트에 어서 오세요.
'기교 시인은 상처 받지 않고…….’
'언제나 이 고비를 넘어가는 법의 사각을 알고…….’
회사에서 배양되는 시체들이
멋진 냄새를 풍기고 있어요.
그래도 시인 되자고 시를 배우지는 마세요.
꿈을 짓밟히면서까지 참지 마세요.
블랙회사는 연필을 깎게 하면서 희망 고문을 하지만
시인이 안 되어도 우린 슬픔을 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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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동의 2009년 영화. 이 시에는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및 김수영 시를 패러디한 구절이 포함되어 있음.
—《문장웹진》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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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안국동울음상점』『연꽃의 입술』『라플란드 우체국』, 평론집『콘텐츠의 사회학』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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