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시 / 장이지

문근영 2017. 10. 31. 12:45

*

 

   장이지

 

 

 

 

고백이란 제도에 어서 오세요.

여기서는 진실만을 말하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마지막엔 강물 위로

비어 있는 죽음을 띄우는 것을.

이를테면 죽은 채로 되돌아오는 아도니스 인형을,

시체의 의식을.

눈물의 유속(流速)을 계산하는 걸 잊지 마세요.

 

고백이란 회사에 어서 오세요.

연분홍 치마에 어서 오세요.

'문학소녀가 이렇게 예쁠 리 없어'에 어서 오세요.

'알바 하는 문단 아이돌'에 어서 오세요.

시와 음악이 있는 문학콘서트에 어서 오세요.

'기교 시인은 상처 받지 않고…….’

'언제나 이 고비를 넘어가는 법의 사각을 알고…….’

 

회사에서 배양되는 시체들이

멋진 냄새를 풍기고 있어요.

그래도 시인 되자고 시를 배우지는 마세요.

꿈을 짓밟히면서까지 참지 마세요.

블랙회사는 연필을 깎게 하면서 희망 고문을 하지만

시인이 안 되어도 우린 슬픔을 쓸 수 있어요.

 

 

   ————

 * 이창동의 2009년 영화. 이 시에는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및 김수영 시를 패러디한 구절이 포함되어 있음.

 

 

 

                        —《문장웹진》2017년 1월호

--------------

장이지 /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안국동울음상점』『연꽃의 입술』『라플란드 우체국』, 평론집『콘텐츠의 사회학』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