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한국 문화재 수난사>(58) / 위조품의 희비극

문근영 2017. 4. 27. 11:29

<한국 문화재 수난사>(58) /

위조품의 희비극



미술품의 모조와 위작만큼 아마추어 애호가로부터 돈 많은 수집가, 나아가서 전문 학자와 미술관·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일도 없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완전무결한 가짜와 위작 미술품들이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에서 진짜 행세를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국제 미술 사회의 관측이다.


한국에서도 이 가짜 미술품과 위작 문화재들의 윤곽을 어림할 수 없을 만큼 범람하고 있고, 또 어디선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은 물론 고의적인 일확천금의 사기 행위이지만 진귀한 역사 유물이나 특정 명가의 글씨 혹은 그림(반드시 걸작이 아니라도)을 찾는 돈 많은 수집가나 미술관·박물관의 심리와 요청이 있는 한 근절될 수 없는 자연 발생적인 사회악이다.


서울의 고미술상과 수집가 사회에 나돌고 있는 가짜 유물과 위작 미술품은 삼국시대의 토기로부터 불상·고려자기 그리고 조선시대의 서화와 각종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침범하고 있다.


물론 그 수는 국내의 전체의 진짜 문화재와 미술품에 비길 때 극히 제한되니 범위에 지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여러 사람을 골탕 먹이고 있다. 가령 현재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글씨로 통하고 있거나 말해지고 있는 것 가운데 67할 혹은 그 이상이 가짜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유명한 난초 그림이라고 말해지는 것들 중 9할은 믿을 수가 없다고 단언한 전문가도 있다.


한국에서 가짜와 위작 미술품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일제 때부터였다. 이 땅에서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던 일본인 수집가와 애호가들이 다투어 진귀하고 유명한 유물과 미술품을 점유하려고 덤비자, 그에 따라 위작자들이 나타나고 무수한 가짜가 나돌게 되었던 것이다.


한 일본인은 1934년에 이런 말을 써 남기고 있다.


교토의 돈 많은 수집가(골동상)가 평양 부근에서 출토되는 고와에 손을 뻗쳐 그 곳 골동상을 통해 상당한 고가로 매점을 착수한 바람에 1930년부터 다음해 가을까지 약 1년간은 값이 치솟고 물건이 동이 났다. 그러자 낙랑, 고구려 와당의 가짜 전성기가 연출됐다. 옛날에 구운 것과 같은 흙으로 감쪽같이 옛것을 흉내 내 만들고, 교묘하게 문양까지 새겨 놓고 구었기 때문에 처음엔 모두 속았다.”


진귀한 유물이나 특정 명가의 걸작엔 한정이 있다그런 것을 지나치게 탐낼 때 가짜가 등장한다. 해방 후에도 숱한 가짜 사건이 골동상과 수집가 사이에 있었으나 그런 일은 당사자들이 서로 감추는 바람에 내막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는 그 때마다 금세 소문이 퍼지곤 했다.


[칠곡 송림사 5층 전탑 사리 장엄구] 보물 325호




[감은사지 서삼층 석탑 사리 장엄구] 보물 366호




불상 같은 금속 유물 분야에선 골동상과 수장가 사회에서 상당한 전문가로 통하는 서울의 골동상인 김 아무개가 경주 근처에서 쏟아져 나온 희귀한 이형 토기에 78백만 원을 투자해서 수백 점을 집중적으로 불법 입수한 후, 수집가 이 아무개(작고)와 정 아무개에게 성공적으로 전매했다가 뒤에 그것들이 모조리 가짜임이 밝혀져 당사자들이 큰 골탕을 먹은 것은 물론 한동안 골동계의 고소거리가 되었던 사건이 1965년께에 있었다. 1970년대 초에는 또 대구에서 삼국시대의 금관이 둘이나 서울의 골동상가에 나타났다가 5년 전에 위작하여 땅 속에 묻어두었던 치밀한 가짜(?)임이 탄로 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수년 전엔 어느 대학박물관에서 가짜 금관을 샀다가 망신을 당한 일도 있다. 전 국립 박물관장 김재원(金載元; 19091990) 박사는 또 미국의 어느 박물관 창고에서도 틀림없는 가짜 신라 금관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가짜 유물, 가짜 미술품의 비화는 수 없이 많다. 그 중엔 정말 진짜를 뺨치는 가짜가 있는가 하면 전문가면 금세 식별할 수 있는 서투른 가짜도 있다. 지난해 봄에 일본에서 온 한 젊은 고문화 연구가가 일본의 어느 재벌 수집가의 최근 입수품이라는 신라시대의 사리 장치 사진을 갖고 와서 서울의 전문가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5년 전에 이미 국내에서 가짜로 점 찍힌 송림사 5층 전탑 유물의 사리 장치(보물 325)의 위작이었다. 그 후 일본으로 유출되어 진짜 행세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의 신라 사리 장치 위작이 최근 일본의 한 예술 잡지의 고미술상 광고에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었는데(물론 진짜라는 설명으로) 이것은 감은사 터의 서쪽 3층 석탑 속에서 나온 유물(보물 366)을 모조한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나는 근대 이후 백 년 동안에 한국의 문화재가 겪은 수난과 민족적인 보호의 이면적인 비화를 확실한 자료와 기록 그리고 유력한 증언 취재로 엮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제한된 단면에 불과하다. 완전히 잊혀 지고 혹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은 비화가 몇 십 배, 몇 백 배도 될 것이다. 그 동안 자료와 기록을 찾고도 충분히 다 소개하지 못한 것도 있다.


현재 정부는 약 1,500여 점의 귀중한 유형 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그 밖에 전통적인 놀이와 음악·연극·공예 기술 등 48종이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또 전국의 중요한 역사유적과 기념물이 그 환경과 더불어 사적으로 지정되어 국가적인 보호가 취해지고 있다. 보존시켜야 할 가치가 있는 옛날의 옷과 민속적인 유물, 기타 시골의 특정 구가가 또한 중요민속자료의 이름으로 지정돼 있다.


일부 문화재의 국가 지정 및 특별 보호는 우리 민족의 긍지와 실체의 문화적 영광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민족 문화재의 한계가 앞서와 같은 제한된 지정·보호에서 금 그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다고 정부와 전문가들이 생각하고 평가한 대표적인 것의 윤곽에 지나지 않는다. 수천 년 민족사의 구체적인 문화유산인 모든 문화재는 학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연구 혹은 보존될 가치를 갖고 있다. 그 중에는 물론 특히 중요한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기도 하지만, 참다운 문화재 가운데 버려서 아깝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으리라.


앞에서 말한 지정 문화재의 수효는 현재 국내에 유존되고 있는 각종 문화재의 1%도 안 된다. 전국의 박물관과 국가 소유의 유적·유물 그리고 개인이 갖고 있는 물건을 모두 합친다면 그 수는 수십만 점 이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구한말 이후 일본과 그 밖의 외국에 유출되고 혹은 빼앗긴 것이 10만 점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 모든 것이 이 땅에서 창조되고 발달한 문화유산이며 동시에 세계 인류 문화의 한 지역적인 기념물이자 역사 유물들이다.


문화재에 대한 오늘의 인식은 그것을 창조한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범주를 떠나 세계 전체 인류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존중·파악되고 있고, 그에 따라 유네스코가 중심이 된 국제적인 보호 운동과 보존 대책이 강구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역사 유물과 미술품의 불법적인 밀수·도난·가짜 제작 등의 사건은 그 때마다 세계 주요 국가가 인터폴(국제 형사 경찰 기구)을 통해 즉각 범죄 정보를 입수하여 범인 체포의 국제 수사에 협력하게 돼 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FBI가 전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죽은 후버 FBI 국장은 미술품의 도난·사기·위조 사건을 전담하도록 하는 특별 수사관까지 임명했다.


모든 문화재와 역사 기념물의 보호 및 보존 운동은 오늘날 국제적인 공동의 문제로 부각돼 있다. 한국에서 문화재 보호법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조치이다. 그러나 문화재 범죄 사건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그 중에서도 국제적인 골칫거리는 밀수 및 유출 음모이다.


문공부가 조사·작성한 자료를 보면, 1) 국제공항과 항구 2) 외교 화물과 유엔군 운송 수단 3) 국제우편과 소포 4) 기타 밀수출(충무·마산 등지를 거점으로 한 작은 화물선과 어선을 이용하는 방법)을 통해 한국의 문화재 불법 반출이 끊임없이 기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문공부 조사 자료는 이러한 한국 문화재의 끊임없는 불법 반출 음모의 원인을, ‘한국 고미술품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 증가고미술품의 국가 간의 가격차로 인한 계획적인 밀수로 파악하고 있다. 그 이면엔 물론 국내의 일부 골동상과 악당들이 관여하고 있음이 분명하고, 이들의 불법적인 암약은 유적지의 도굴과 매장 및 은닉 문화재 절취, 그 밖의 범죄 행위자와 더불어 민족 문화재 보호에 커다란 암이 되고 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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