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재 수난사>(14) /
요릿집 정원에서 기적적으로 되돌아온 불국사 사리탑(佛國寺 舍利塔)
1902년 8월 어느 날, 경주의 불국사를 찾아온 일본인 고적 전문가가 있었다. 당시 동격제국대학 조교수였던 세키노 다다시(關野 貞; 1868~1935)였다. 그는 대한제국 정부의 초청으로 이 땅의 옛 건물(고건축물)과 고적의 실태를 조사한다고 하였으나 실제 내막은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한반도 침략 계획에 필요한 입체적인 정보 수집을 위해 일방적으로 강청한 각 분야 시찰ㆍ조사의 일환이었다.
행동과 예산에서 특권이 보장되었던 세키노는 그 때 한국의 주요 고적지와 옛 건물을 매우 정확하게 조사ㆍ파악하고 돌아갔다. 개성 근처의 폐사지에서 현재 국보로 지정돼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을 처음으로 조사ㆍ평가한 것도 그 때였다.
세키노의 발길이 처음으로 경주에 닿았을 때의 불국사는 말할 수 없이 황폐된 상태였다. 지키는 중도 한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감히 절 안의 유물을 훔쳐다 파는 무뢰한은 한국인 가운데는 한 사람도 없었던 시절이라, 비록 무너지고 깨지고 했을망정 신라 이후의 걸작 석조물들과 불상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키노는 그것들을 낱낱이 조사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는 이 때의 조사 정보를 2년 후인 1904년에 일본에서 발표한 <한국 건축 조사 보고>에 포함시켰다. 그러자 당시 한국에 건너와 있던 한 일본인 무법자가 불국사 쪽으로 당장 약탈의 손을 뻗쳤다. 다음은 현재 불국사 대웅전 뒤쪽 비로전 앞의 자그마한 보호각 속에 들어 있는 사리탑(보물 61호)이 그 때 당했던 수난의 내력이다.
1902년에 한국의 고적과 고건축물을 처음으로 조사하러 왔을 때, 세키노는 그 때 벌써 개성에 정착하고 있던 그의 동족인 한 일본인으로부터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신세를 생각해서 세키노는 일본에서 출판한 그의 <한국 건축 조사 보고> 한 권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그 선물은 결과적으로 개성의 그 자에게 한국에서 약탈할 만한 중요한 문화재의 정보를 제공한 격이 되고 말았다.
1906년의 일이었다. 세키노가 알려준 정보를 갖고 경주로 내려간 개성의 일본인은 불국사에 이르러 몇 명 되지도 않았던 사승들을 위협하고 약간의 돈을 집어준 후, 섬세하게 조각된 사리탑 하나를 일본으로 반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즈음 도쿄에 있던 세키노는 우에노 공원 부근의 ‘정양헌(精養軒)’이란 요릿집 정원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도 일본인이었다. 같은 일본인이 한국에서 약탈해 온 불국사 사리탑의 불법적인 처사를 고발하기는커녕 <국화>라는 잡지의 요청으로 해설을 썼다. 물론 배후의 범죄 행위엔 입을 다물고 있었다.
1909년 이후, 세키노는 재차 한국에 와서 고적 조사를 하게 되었다. 한일합방 직후의 조선총독부는 그에게 불국사에서 일본으로 반출해 간 사리탑을 되찾아다가 원위치에 놓도록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그 사리탑은 도쿄의 요릿집에서 이미 딴 데로 팔려나간 후, 행방을 감추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몹시 마음에 걸렸었는지 그 후 세키노는 사리탑의 행선지를 계속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20년.
드디어 그는 도쿄의 나가오 긴야(長尾欽彌)라는 제약회사 사장 집 정원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1933년 5월 말의 일이었다. 몇 다리를 거친 소유자였던 나가오가 그 때 세키노에게 어떻게 설복 당했는지, 7월 말에 가서 조선총독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불국사의 원위치로 사리탑을 깨끗이 반환했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한편 불국사의 다보탑 돌사자를 약탈해 간 자도 사리탑의 범행자인 개성의 그 일본인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거기에 대해선 세키노도 별 언급이 없다. 다만 그는 1902년에 조사할 때엔 4구가 다 있었는데 1909년에 다시 와 보니 비교적 완전한 2구가 반출돼 있었다고 언급했을 뿐이었다(<조선의 석탑파>, 1912∼1913년). 그렇다면 그 뒤에 다른 일본인이 남은 2구 중 하나를 또 약탈해 간 것이 된다. 이렇게 두 번에 걸쳐 다보탑에서 잃은 3구의 돌사자는 석굴암의 5층 소탑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일본 안의 행선지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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