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충렬사(忠烈祠)
원경(노량 바다)
사당
•지정 번호; 사적 233호
•소재지;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
•지정일; 1973년 6월 11일
•시대; 조선시대
•분류; 사당
•내용;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끝나던 해인 1598년(선조 31) 노량 해전(露梁海戰)에서 순국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 충렬사라고도 한다. 통영의 충렬사(사적 236호)와 함께 ‘충렬’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仁祖)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1632년(인조 10)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1658년(효종 9)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1663년(현종 4)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한 충무 이공 묘비(忠武李公廟碑)가 사당 곁에 있으며, 비문은 1661년(현종 2)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썼고, 1663년(현종 4)에 박경지(朴敬祉; 1610~1669) 등이 세운 것이다.
•특기 사항; 옛날에는 이 사당 곁에 호충암(護忠庵)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화방사(花芳寺)의 승려 10명과 승장 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공이 죽은 후 자운이란 승려가 공을 사모하여 쌀 수백 섬을 싣고 와서 공을 위해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운은 원래 충무공의 밑에 있던 승병이었다. 충렬사는 충무공의 노량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 경내에는 비각·내삼문·외삼문·관리사 등이 있고, 사당 뒤의 정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 묻었던 자리에 묘가 남아 있으며, 1948년 정인보(鄭寅普; 1893~1950)가 쓴 충렬사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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