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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해 봉황동 유적(鳳凰洞 遺蹟)

문근영 2016. 5. 10. 07:43

김해 봉황동 유적(鳳凰洞 遺蹟)





전경




유적지 노출 상태


지정 번호; 사적 2

소재지;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253

지정일; 1963121

시대; 청동기시대(1~4세기)

분류; 패총

내용; 패총은 조개껍질과 생활 쓰레기가 함께 쌓여 있는 유적으로 조개더미라고도 하며 당시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김해시 봉황동의 봉황대 유적과 인근의 동쪽으로 회현리 패총 및 무덤 유적이다. 낙동강 하류의 충적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구릉 위에 쌓여 있는 패총 유적으로 규모는 동서 길이가 130m, 남북 너비는 약 30m 가량 되고 쌓임층의 높이는 6~7m 정도가 된다. 유적 남쪽의 비탈면은 급경사지로 현재 대나무와 잡목 등이 자라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1~4세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1907년 일본인인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처음 발견, 조사하여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유적이 발견된 이후 여러 차례 발굴 조사가 있었고, 1933827일 조선총독부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1920년에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와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1934~35년에 가야모도 모리토[榧本杜人]가 대규모 발굴 조사를 하여 유적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으나 발굴 방법에 문제가 있어 층위에 따른 유물의 성격을 밝히는데 어려움이 있다. 지정 면적은 90,033[27,283]이다.

  봉황동 유적의 발굴에서 나온 자료들을 보면 먼저 식생활 자료인 조가비와 짐승 뼈, 그리고 탄화미(炭火米; 불탄 쌀)이 있다. 조개류는 모두 34종이 확인되고 갑각류도 4종이 있으며, 짐승 뼈로는 사슴멧돼지 뼈 등이 보인다. 탄화미는 패총 층 아래에서 나왔는데 낱알의 생김새는 길이가 짧은 편이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 뼈 연모, 각종 철기, 유리옥, 석기, 방추차(紡錘車; 가락바퀴) 그리고 중국 한나라에서 만든 화폐인 화천(貨泉)1점 나왔다. 토기는 출토 유물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김해 토기또는 김해식 토기라고 부른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 1~3세기를 대표하는 토기로 토기 빛깔이 적갈색이나 회청색을 띄는 타날문(打捺文; 때린무늬) 기법으로 무늬를 새긴 것으로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토기의 중간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토기들이 뒤에 신라 토기와 가야 토기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생산 도구는 철제 도끼, 손칼[刀子] 등이 있고 돌로 만든 도끼, 반달칼, 숫돌도 있으나 석기들은 패총이 이루어지기 전 단계의 것들로 보아야 한다. 뿔로 만든 송곳, 활촉, 그리고 철제 손칼에 끼워 쓰는 손잡이 장식도 있다. 화천은 중국 신()나라의 왕망(王莽)이 기원전 14년에 처음 만든 것으로 유적이 형성된 연대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유적 동쪽 정상부에서 발굴된 무덤들은 패총과는 다른 시기의 것이다. 지석묘 1, 석관묘(石棺墓; 돌관무덤) 5, 옹관묘(甕棺墓; 독무덤) 3기와 무덤 근처에서 집터도 1기 나왔다. 옹관묘 밑에서는 세형동검을 비롯한 청동 유물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회현리 패총 유적은 패총과 무덤이 서로 다른 시기에 이루어졌고 패총 층 안에서도 두 개 이상의 층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기 사항; 패총의 동쪽에서 지석묘, 항아리에 뼈를 넣었던 옹관묘, 집터가 발견되었는데 무덤들은 청동기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회현리 패총은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1~4세기경 생활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유적이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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