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나는 지금 운전 중 (외 1편) / 윤석산

문근영 2016. 5. 4. 06:59

나는 지금 운전 중 (외 1편)

 

  윤석산

 

 

 

차창 밖 진눈깨비 질척질척 내리고 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나의 운전 마음이 쓰인다.

 

훈훈한 히터, 차 안은 이내 노곤해지고

백미러로 보이는 뒷좌석

아내와 딸아이 머릴 맞대고 잠들어 있다.

 

곤곤히 내리는 세상의 진눈깨비.

백미러 안 머릴 맞댄

아내와 딸아이 달려가는 달디단 꿈

 

그 길,

그 한 모퉁이

 

조심조심, 나는 지금 운전 중이다.

 

 

 

전철 안 홍해

 

 

 

그가 저쪽 칸에서 이쪽 칸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들 모두 양쪽으로 갈라서며 길을 열어준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건너는 것과도 같이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그는 우리들 사이를 건너고 있다.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건너는 음악의 홍해

여기저기 때로는 동전 한 닢, 때로는 지폐 한 장

던져주는 사람들 사이,

동전도 지폐도, 또 세상도 아랑곳없다는 듯이

그는 다만 구슬픈 음악으로

이 칸에서 다시 저 칸으로

기적이 없는 시대의 기적, 꿈꾸듯

그렇게 건너가고 있다.

 

 

 

                      —시집《나는 지금 운전 중》에서

 

-------------

윤석산 / 1947년 서울 출생. 1967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동시, 1974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바다 속의 램프』『온달의 꿈』『처용의 노래』『용담 가는 길』『적』『밥 나이, 잠 나이』『나는 지금 운전 중』. 현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yoonsuksan@hanmail.net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