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도미노 / 함기석

문근영 2016. 5. 6. 07:05

도미노

 

   함기석

 

 

 

단꿈을 꾸던 고양이 도미노가 잠결에 툭

앞발로 지지대를 건드리자

첫 번째 자명종 시계가 쓰러진다 어둠 속에서 벨이 울리고

낮 동안 살을 베고 잠든 칼들이 눈을 뜬다

바다뱀의 모습으로

 

두 번째 거울이 쓰러진다

죽음이 비옷을 입고

누군가를 만나러 횟집 골목을 지나 지하 차고로 들어가고

세 번째 꽃병이 쓰러진다

바닥 여기저기 흩어지는 노란 진통제 알약들

 

도마엔 아직도 파닥거리는 도미의 눈

낮에 살이 반쯤 베여

척추가 드러난 새벽 한시가 두시가 세시가 연달아 쓰러지고

잿빛 머플러처럼 나부끼는 하늘로

접시들이 날아간다

 

한 꺼풀 한 꺼풀 죽은 자들의 꿈이 얇게 저미어져 쌓인

시집들이 쓰러진다

사람의 입속엔 자신의 눈을 찌를 붉은 자객이 잠들어 있다

사막에 불시착한 여객기의 모습으로

차례차례 사람들이 쓰러지고

 

똑! 똑! 똑! 창밖 어둠 속에서

흰 눈에 덮인 검은 말이 혼자 흐느끼며 서 있다

형체도 성별도 나이도 없는 고양이 도미노가 꿈꾸는 겨울밤

소리도 색도 향기도 없는 나의 빈 창에 남는

또렷한 입술 자국 하나

 

 

 

                        —《문학동네》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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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석 /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한양대학교 수학과 졸업.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오렌지 기하학』『뽈랑공원』『착란의 돌』『국어선생은 달팽이』, 동시집 『숫자벌레』, 동화집 『상상력학교』『코도둑 비밀탐정대』『야호 수학이 좋아졌다』『황금비 수학동화』 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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