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재활용
한혜영
쓰고 남은 말을 쌓아두는 야적장이 있다면
나는 삼백육십오일 창고에 갇힐 거야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송전탑처럼 가시가 돋친
부러진 삽날처럼 뒹구는
쏙쏙 알맹이만 발라먹은 게 껍질 같은
레게머리처럼 가닥가닥 배배 비틀어 꼰
반쯤 타다가 말았거나 지금도 불타는
뇌관 시퍼렇게 터지지 않은
말을 수선하는 일로 식음을 전폐할 거야
날마다
용접봉에 불꽃 튀기며 말을 수선할 거야
알록달록하게 페인트칠도 하고
달랑달랑 예쁜 고리도 매달아준 뒤
이 재활용품 말을
내 나머지 인생 한쪽에 쌓아놓고
인심 좋게 나눠줄 거야
지지든지 볶든지 그대 인생에
약간의 영양가를 끼치면 좋겠다고
—《현대시학》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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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영 / 1954년 충남 서산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뱀 잡는 여자』.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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