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손잡이에 관한 보고서
김지요
끼니를 때울 땐 라면이 제격이고
라면은 양은냄비에, 냄비 손잡이는
숟가락을 이용해야 전문가의 격이 느껴지지 않는가
양은냄비 손잡이를 숟가락을 이용해
들어 올릴 때는 몇 가지의 불문율이 있다네
숟가락을 쥐고 있는 손의 힘 조절은 필수지
너무 세게 냄비를 들어 올리면 단박에 평형감각이 깨지고 말지
냄비 속의 라면 국물이 술렁이고
손잡이는 상대를 얕잡아보게 마련이야
숟가락의 기울기 또한 지나칠 순 없지
지렛대와 같은 완급 조절이 필요해
숟가락이 턱없이 깊게 들어가면 헛손질만 하게 된다네
손잡이에 휘둘리는 날에는 다 끓인 라면을 엎기 일쑤
바닥에 풀어헤쳐진 라면을 주워 담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굴욕적이지
변검술에 능한 生의 손잡이를 다룰 때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그럼에도 무릎을 꿇게 하는 변수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기를,
뜨거운 손잡이를 맨손으로 잡는 실수는 더더욱 없기를,
수없이 물집이 자리 잡았던 손으로 쓰는
손잡이의 주도권에 대한 방법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라네
—《웹진문장》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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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요 / 전남 보성 출생. 2008년 《애지》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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