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
나금숙
오늘 누가 오든지 어떻게 오든지 그것은 비다. 창밖이 수선스러워서 문을 열자 비가 먼저 와서 의자에 앉는다. 빈 새장을 기웃거리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테이블을 놓는다. 새로 산 스웨터는 비냄새를 풍긴다. 오래된 방짜유기 놋냄새를 풍긴다. 비는 극세사 담요 속으로 와서 잔다. 밟힐까 봐 마음 졸인다. 비를 밟은 발바닥이 뭉클, 비는 털실뭉치처럼 뭉쳐져서 구석으로 영원히 굴러간다. 비는 택배회사가 가져오는 원통형 박스, 키가 상자보다 커서 눌러 담는다. 꼬르륵 마지막 하직 인사를 남기고 지상에서 사라진다. 뚜껑을 열자 멧새처럼 날아오르는 비, 막사발 속으로, 위패 속으로 들어간다. 비는 흘러내리는 사각형 속에서 천천히 증발하고, 오늘을 기다리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단념하고 잠이 들면 댓잎 같은, 깃털 같은 비가 온다. 너무 친밀해서 있는지도 모르는 내 속의 숨처럼 비는 항상 온다. 있는지도 모르는 당신처럼 온다 오지 않는다. 내일 올 것이다. 육체가 없어도 남는 영혼처럼, 사랑처럼, 마른 땅을 보려고 높이 날아간 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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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르의 아랍어적 의미는 '명백한' '가시적인'이다. 이슬람교에서 알라(하느님)의 한 속성으로 규정되고 있다. 작가 보르헤스의 단편 제목이기도 함.
—《유심》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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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숙 / 1957년 전남 나주 출생. 2000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 시집 『그 나무 아래로』『레일라 바래다주기』. nnn205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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