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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꽃잎 (외 1편) / 복효근

문근영 2016. 4. 20. 09:17

꽃잎 (외 1편)

 

   복효근

 

 

 

국물이 뜨거워지자

입을 쩍 벌린 바지락 속살에

새끼손톱만한 어린 게가 묻혀 있다

 

제 집으로 알고 기어든 어린 게의 행방을 고자질하지 않으려

바지락은 마지막까지 입을 꼭 다물었겠지

뜨거운 국물이 제 입을 열어젖히려 하자

속살 더 깊이 어린 게를 품었을 거야

비릿한 양수의 냄새 속으로 유영해 들어가려는

어린 게를 다독이며

꼭 다문 복화술로 자장가라도 불렀을라나

이쯤이면 좋겠어 한 소끔 꿈이라도 꿀래

어린 게의 잠투정이 잦아들자

지난 밤 바다의 사연을 다 읽어보라는 듯

바지락은 책 표지를 활짝 펼쳐 보인다

책갈피에 끼워놓은 꽃잎같이

앞발 하나 다치지 않은 어린 게의 홍조

 

바지락이 흘렸을 눈물 같은 것으로

한 대접 바다가 짜다

 

 

 

(聖) 물고기

 

 

 

기어이 가야 할 그 어딘가가 있어

여울목을 차고 오르는 눈부신 행렬 좀 보아

잠시만 멈추어도 물살에 밀려 흘러가버릴 것이므로

아픈 지느러미를 파닥여야 하네

푸른 버드나무 그늘에서조차 눈 감지 못하네

오롯이 지켜야 할 무엇이 있어

눈 뜨고 꾸는 꿈은 얼마나 환할 것인가

그 아득한 향수가 아니고서는 비늘이 온통 은빛일 리가 없지

뉘우침이 많은 동물이어서

평생을 물에 제 몸을 씻으며

물고기는 한사코 길을 간다네

온몸으로 물을 뚫고 길을 내지만

이내 제 꼬리지느러미로 손사래를 쳐 지워버리네

지나온 길을 길이 아니라네

제 몸 길이만큼만이 길이어서

발자국도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네

화살촉 같은 몸짓으로 말하네

살아 있는 물고기만이 비린내가 없다고

그러나 그것만이 살아야 할 이유는 아니라는 듯

묻고 있네

네 가슴에도 천국의 지도 하나쯤 품고 있느냐고

낚시 바늘에 얹힌 한 끼 식사에 눈길 주지 않은

몇 마리 물고기

거친 물살에 제 살을 깎으며

강을 거슬러 오르네

 

 

 

                       —시집『따뜻한 외면』(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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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1962년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새에 대한 반성문』『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목련꽃 브라자』『마늘촛불』『따뜻한 외면』,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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