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돼지우리에서 / 강 정

문근영 2016. 4. 20. 09:18

돼지우리에서

 

   강 정

 

 

 

그는 성기에 눈이 달린 남자였다

나는 단지 조용히 방문을 닫고 그의 얼굴을 바라만 봤다

성긴 머리타래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

창밖에 늙은 개가 지나갔다

 

그는 커다란 식빵 속에서 살았다

우유와 버터를 사다주지 않으면 엉덩이를 드러내며 울었다

꺼억꺼억 짐승소리를 내며 울었다

마당을 질러가는 고양이에게 눈빛을 쏘기도 했다

 

그는 책을 읽으면 글자들이 지워진다고 했다

파헤쳐진 밭이 나타나고 짐승의 똥냄새가 풍긴다고도 했다

노래 부르고 싶을 땐 이를 악물고 쇳소리를 냈다

자기의 성기로 자기 항문을 헤집을 거라고 했다

 

그는 세계가 자신의 몸 속 같다고 했다

나는 가만히 그의 눈을 핥았다

그때마다 그의 젖꼭지에서 시큼한 풀이 자랐다

우유를 뿌려 그것을 뜯어먹으라 했다

 

볕 잘 드는 처마 아래서 참새를 잡아 피리 부는 시늉을 할 때,

먼 곳의 집들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았다

그는 내게 엉덩일 맡긴 채 눈물 흘렸다

그가 사람이 되어 말을 한다면 나는 그를 죽일 것이다

 

그는 엉덩이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 개의 구멍을 더 갖고 싶다며 눈을 찌르며 피 흘렸다

항문을 뚫고 빠져나올 자신의 성기에 새 이름을 걸어 달라했다

나는 다만 가만히 앉아 흐르는 피를 받아마셨을 뿐, 그의 육질은 신의 발톱 같았다

 

 

 

                    —《시와 사상》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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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 1971년 부산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가을호로 등단. 시집 『처형극장』『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키스』『활』.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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