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쁨 (외 1편)
구광렬
새 한 마리 날자 숲의 밑자락 굳기 시작한다 나무들과 난 거친 파피루스 속 풍경이 되어 원근을 잃어간다 그림 속에 갇히기 싫은 새는 푸드득 날갯짓하지만 다리와 꽁지가 그림 속에 갇힌다
반 이상 그림이 돼버린 산 그림자, 산들바람에도 팔랑인다 그림 밖 새의 몸통에서 떨어지는 깃털은 그림 속 치켜든 내 얼굴을 간질이다 옷자락 무늬가 되기도, 하지만 부피 없이 가라앉는다
난 무량한 점으로 이루어진 선, 기력을 다해 몸의 끝점을 그림 밖으로 밀쳐보지만 빠져나가는 건 해 질 녘 연기 같은 내 그림자뿐 믿을 건 기도밖에 없으나 기도는 내 몸의 지도를 더듬을 때만 역사하는 것이니 부피 없는 두 손을 모을 순 없고
흐르는 구름 아래 정지된 숲, 몸통의 반이 그림 밖으로 돌출된 새, 까악까악 슬피 노래하다 기쁨으로 우는, 막 빠져나가버린 내 그림자 반 장
* 슬쁨 : 슬픔과 기쁨의 합성 조어.
뜰채
우럭회 小자 하나를 시킨다
고둥을 이수시개로 빼먹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송 선생에게 자릴 바꾸자 한다
-왜 꼴 보기 싫은 놈 있어요?
-아니, 거울에 비치는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수족관을 마주 보게 된다
멍게와 해삼 쪼가리를 집어 먹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왜,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요?
-아니, 난 기분 좋은 데
기분 좋지 않아 하는 놈이 있어서
광어는 바닥에 붙어 있어 눈이 마주치질 않는데
우럭의 큰 눈알과는 자꾸만 마주친다
둘의 시선, 가젤영양과 표범 간의 시선 같진 않다
반대일 것 같다
-한잔 하시죠
-아니, 내가 따라줄게
소화가 안 된다
한 알, 한 알, 땅콩을 넘길 때마다 우럭의 눈치를 보게 된다
송 선생은 배가 고픈지 얼굴도 들지 않고
성게 알, 소라, 오분자기, 해삼을 게걸스레 먹는다
-여기 오길 잘했죠? 쯔끼다시가 좋잖아요
-아니, 잘못 왔어
아니, 잘 왔는데, 잘 못 앉은 것 같아
주인이 뜰채를 들고 올 때마다 한 마리씩 사라진다
하지만 우럭은 남아있다
표범의 저녁밥이 되리란 걸 알면서도
물가에서 목을 축이는 영양처럼
소주를 잔에다 부어 송 선생에게 권하지도 않고 마셔버린다
-아유, 술이 부쩍 느셨네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세상 모든 바다는 이어져있다
하지만 그의 바다는 끊겨 있다
그게 내 탓이라는 듯, 있는 힘을 다해 눈동자를 부라린다
-송 선생, 다른 걸 먹으면 안 될까? 러시아산 왕게도 있는 것 같은데
-왜, 대게가 드시고 싶어요? 이미 준비 하고 있을 텐데……
-아직 있잖아
-뭐가요?
-우럭
……
-뜰채가 지나갔나 봐요
—시집『슬프다 할 뻔했다』(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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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 / 1956년 대구 출생. 멕시코 국립대학교(UNAM)에서 중남미 문학을 공부. 1986년 여름, 시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을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El Punto』에 발표. 한국 문단에서는 2004년《현대문학》1월호에 시 「들꽃」을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시작, 2007년 시 「바오밥」으로 전남대 용봉문학회에서 공모한 오월문학상 시 당선. 『불맛』 『나기꺼이막차를놓치리』 외 4권의 한국어 시집, 『하늘보다 높은 땅La tierra mas alta queel cielo』 『팽팽한 줄 위를 걷기Caminar sobre la cuerda tirante』 외 5권의 스페인어 시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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