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사과 얼마예요 / 조정인

문근영 2016. 4. 19. 06:39

사과 얼마예요

 

      조정인

 

 

 

   상점이 사과여도 좋겠습니다 사과는 사실 온몸이 서쪽이지요 사과 속에 화르르 넘어가는 석양, 석양에 물든 맛있는 책장들 산산이 부서지는 새떼 산소통이 넘어지고 쏟아지는 바람 호루라기 소리 길게, 길게 풀리는 붕대와 그리고 구토 촛불이 타오르는 유리창 당신의 우는 얼굴이 엎질러집니다 시럽이 흐르는 접시들을 누가 난장으로 던집니까 밀크를 섞으면 안개의 표정으로 몽롱해지는, 긴 손가락 사이 시거 욕조 속의 정사는 어땠습니까 여자의 검정 유두에 묻은 흰 구름이 정오를 지나갑니다 뒹굴뒹굴 북회귀선을 넘어가는 태양의 휠체어 인류라는 무정형의 얼굴에 던져진 원죄의 돌멩이 퍽! 칼날이 지나가는 북반구 당신은 여전히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추구합니까 사과 아닌 사과도 없지만 사과인 사과는 더욱 없지요 서쪽 아닌 서쪽도 없지만 서쪽인 서쪽은 더욱 없는 것처럼 봉쇄된 우물 적막이지요 온몸이 커튼인 깜깜한 밤이 저기 옵니다 덜컥이는 틀니 아니, 사과 얼마죠?

 

 

 

                       —《詩로 여는 세상》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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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인 / 1953년 서울 출생. 1998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장미의 내용』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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