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
김해준
인형의 가죽을 벗겨 솜을 빼낸다. 사시였던 눈알이 평지에 닿아서야 곧추떠진다. 색 바랜 겨울은 뒤꼍에 쌓여간다.
실밥 뜯는 소리에 빛이 물러간다. 중국인 어머니는 피혁을 벗기던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렵에 누운 아이가 우울을 배우며 한 끔씩 자란다.
등 안에서 죽은 나방의 그림자가 바람을 끌고 창문턱에 어른거린다. 묻혀있던 모든 사물의 살갗에서 각질이 벗겨진다. 육신이 눕고 그림자가 일어서는 야음이다.
입술을 깨물며 뼈로 껴안은 가슴은 메말랐다. 눈 속에 갇힌 물방울만한 초점에 맺혀 풍경을 삭힌다. 눈썹 점이 애벌레의 심장으로 두근거린다. 눈물이 이불에 스며들어 가볍게 난다.
—《시산맥》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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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준 / 1985년 출생. 2011년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2년 봄《문예중앙》으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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