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거리는 시
박완호
그 방의 유리창은, 소리를 가득 채운 병의 투명한 마개마냥 단단하게 잠겨 있다.
손이라도 잘못 갖다 대면 순식간에 쏟아져버릴 것 같은 액체의 말들, 출렁거리는 유리병 속 포도주처럼 발효하는 소리의 입자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귓구멍을 꽁꽁 틀어막은 벽들이 사방을 에워싼, 창 밖에서는
물기 빠져나간 가지와 결별한 천만 이파리들 늦가을 바람에 휩쓸리는 소문, 엎어진 화투판처럼 술렁거리는 게 보인다.
유리마개를 살짝 연 다음,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는 날랜 말들을 끄집어내고 싶은,
시가 태어나기 참 좋을 무렵의
—《시산맥》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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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호 / 충북 진천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안의 흔들림』『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아내의 문신』『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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