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Y / 김혜순

문근영 2016. 4. 13. 07:55

Y

 

   김혜순

 

 

 

수사학이 헌법인 나라에 살아본 적이 있습니까?

 

은유 경찰이 그림자 수갑을 철컥 채우는 나라

 

한밤중에 운전대를 잡게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상상력입니다

 

당신은 무엇 무엇의 의인화입니까?

 

북극곰 의인화, 경찰관

술 취한 토끼 의인화, 피의자

입니까?

 

수사학이 헌법인 나라에서 긴급 전화를 걸면

꿈속의 전화처럼 손은 떨리고 숫자는 잊어버리고

수화기에서 모르는 외국어처럼 소음이 쏟아집니다

 

이때 당신은 무슨 무슨 행성의 반사입니까?

 

창문을 열면 화면 조정 전의 모니터처럼

심하게 안개비 내려와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 나라에선 그걸 투명한 계시라고 부릅니다

 

떠나버린 사람은 지금 무엇으로 남아 있습니까?

 

지구별과 함께 공전하고 자전하며 매순간

떨어져가는 지구별 그림자엔

누가 누가 살고 있었습니까

 

허랑방천으로 떨어져가던 그림자가 창문에 잠깐 달라붙습니다

그 그림자가 흐느낍니다

 

나는 아직 반어로 말하면 처단 받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만

 

나는 매일 의인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만

 

나의 뇌 속으로 나방 한 마리 날아듭니다

원시인이 그린 동굴 벽화처럼 뇌벽에 달라붙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떠나간 이에 사로잡힌 뇌의 은유입니까?

 

나의 뇌파 소용돌이를 건너가 보시겠습니까?

불분명하게 흐려지는 풍경 너머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기억이 수사학에 체포되는 매트릭스를 건너가 보시겠습니까?

 

정면충돌 사고로 부서져 내리는 자동차 앞 유리처럼

무너지는 풍경을 아직도 간신히 두 손으로 받치고 서 있습니다

내가 두 손을 든 모습은 멀리서 보면 희미한 천사 같습니까?

 

이제 막 죽은 사람의 뇌파가 끊어지는 그 시각

마지막으로 그가 건너게 된다는 환하게 밝은 터널 속

그곳을 의인화하면 흰 옷 입은 천사가 현현합니다

 

의인화는 등장인물의 사후 도로교통법입니까?

 

그 천사를 우리 사이에서 통하던 언어로 영영 증발시켜버리고 난 다음

포동포동한 재앙 에너지의 현현을 보았느냐고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무가 하늘로 뻗어가는 자세와 천사가 땅으로 내려오는 자세

 

Y

 

수사학이 헌법인 나라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두 손을 치켜든 사람들이 Y字 모양 가로등처럼 늘어서서

안개비 소음처럼 내리는 야생의 마지막 환한 터널을 향해 멀어져 가는 곳

 

 

 

                       —《현대시》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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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1979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 『또 다른 별에서』『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어느 별의 지옥』『우리들의 陰畵』『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 기계』『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슬픔치약 거울크림』.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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