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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살아남은 애인들을 위한 노래 / 이이체

문근영 2016. 4. 13. 07:55

살아남은 애인들을 위한 노래

 

  이이체

 

 

한번의 연애가 끝나자 한편의 시가 완성된다

당신을 필사해온 내 이력의 최후

모든 외마디는 명멸한다

돌아오지 않는 폐곡선,

오늘은 누구라도 나를 조심했으면 좋겠다

 

상처는 녹슨 뼈에 새겨지는 방식으로 남겨진다

필름이 끝나는 소리가 난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곁에 있는 게 아니야, 그저 남겨지는 거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입에서 귀로 흘러들어가는 종언

나는 당신을 저주하는 나를 용서하기로 한다

 

날짐승들은 흙을 더 많이 기억한다

부르튼 눈동자로 보는, 푸르지 않은 수평선

모두 잊고 태워버린 시집에는

완벽하게 윤색된 기억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거짓말들로 꾸려진 가구들은

언어의 공백을 감정하느라

사무치도록 흉측했을 것이다

오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오해하는

 

아무 이유 없이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버려진 퍼즐 한조각 같은 불구로 남기를

당신보다 당신의 비밀을 사랑해요

사랑의 애인이란 그토록 외로이 무능하다

처절하고 치졸하다

연애, 가장 소원한 애무는 위로받는 일

타인이 쓰고 간 축축해진 칫솔을 다시 쓰면서

 

때로, 만나본 적 없는 소문이 나를 살해한다

창가에서 상념과 함께 블그스름하게 젖어드는

육신을 위해 날개를 만들 것이다.

촛농을 녹여 만든

어떤 애인은 살아서도 방치되는 의미에 가깝다

당신의 뼈를 잊지 않을게요

부둥켜안아도 만질 수 없던 그 내부의 울림을

입술들을 다시 모아 붙이면

침묵을 폭로하던 홀몸이 부서질 것이다

어떤 익명이 나를 안으면 그 이름이 되겠다

 

윤회의 집에 이르러,

불살랐던 시집들이 낳은 잿더미가

뿌옇게 바닥을 지배하고 있다

당신은 내 심장을 기억해주시겠습니까

가면들은 저마다 자신을 풍자한 언어에 불과할 뿐

제 몸이 아픈 줄 모르고 떠났다가

죽어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통증을 얻으러 나선 전쟁터에서

수레 가득 주워온 죽음들끼리 서로 부대낀다

저 무일푼의 생애들을

현생에 초대된 적 없는 연애로 봐도 될까

나는 당신이 버리지 않는 시구로만 독해되겠다

비유로부터 빌려온 애인이

헐벗은 습성을 보채고 있다

몇가지 다른 종류의 침묵들이 갖고 싶어지는 순간

문 열린 독방에서 나가지 않는다

 

 

 

                      —《창작과 비평》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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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체 / 1988년 충북 청주 출생. 2008년 《현대시》신인상에 「나무 라디오」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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