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아파트를 펼쳐보는 시간 / 김민철

문근영 2016. 4. 5. 08:29

아파트를 펼쳐보는 시간 

 

   김민철

 

 

 

저수지가 메워지고

그 자리에 15층짜리 아파트가 세워졌다

저녁이면 노을이 아파트 유리창마다 저수지를 그린다

태양이 수평선에 턱을 괴고 긴 하품을 하고

낮부터 햇살에 취한 갈대들이 자꾸만 비틀거린다

갈대 그림자 뒤에 숨은 작은 오소리들은

가끔 열리는 창문 안으로 숨어 이른 잠에 빠지면

수면 위에 콧구멍만 내민 채 철새를 기다릴지 모른다

유리창에 벤 물살은 성에를 따라 서서히 지워지고

별빛은 자동차 매연에 묶여 지하주차장으로 끌려갔는지

하릴없는 CCTV만 외로운 어둠을 샅샅이 뒤진다

물푸레나무 같은 아파트,

머리 위로 철새들이 달집을 향해 날아간다

몇몇은 저수지 정류장이 고여 있다는 착각으로

유리창에 발을 담그다 물갈퀴가 찢어지기도 하고

몇몇은 아파트 머리 위에 둥지를 몰래 틀고

물고기가 지나간 밤하늘을 읽어보고 싶어한다

내일이면 이 쓸쓸한 아파트는

신문의 경매 페이지에 분양될 것이다

저수지는 이제

누구나 와서 펼쳐볼 수 있을까

 

 

 

            —《시산맥》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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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 1981년 서울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중. 2012년 〈문화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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