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얼음처럼 / 이장욱

문근영 2016. 4. 5. 08:28

얼음처럼

 

   이장욱

 

 

나는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고 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세계를.
나는 자꾸 물과 멀어졌으며
매우 다른 침묵을 갖게 되었다.

 

나의 내부에서
나의 끝까지를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나의 저 너머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들을.

 

그것은 꽉 쥔 주먹이라든가 
텅 빈 손바닥 같은 것일까?
길고 뾰족한 고드름처럼 지상을 겨누거나
폭설처럼 모든 걸 덮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가위 바위 보는 아니다.
굳은 표정도 아니다.

 

내부에 뜻밖의 계절을 만드는 나무 같은 것.
오늘밤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
는 생각 같은 것.
알 수 없이 변하는 물의 표면을 닮은.

 

조금씩 녹아가면서 누군가
아아,
겨울이구나.
희미해.
중얼거렸다.

 


                          —《유심》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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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이 있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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