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없는 잠
최문자
어젯밤 꽃나무 가지에서 한숨 잤네
외로울 필요가 있었네
우주에 가득 찬비를 맞으며
꽃잎 옆에서 자고 깨보니
흰 손수건이 젖어 있었네
지상에서 없어진 한 꽃이 되어 있었네
한 장의 나뭇잎을 서로 찢으며
지상의 입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네
저물녘 마른 껍질 같아서 들을 수 없는 말
나무 위로 올라오지 못한 꽃들은
짐승 냄새를 풍겼네
내가 보았던 모든 것과 닿지 않는 침대
세상에 닿지 않는 꽃가지가 좋았네
하늘을 데려다가 허공의 아랫도리를 덮었네
어젯밤 꽃나무에서 꽃가지를 베고 잤네
세상과 닿지 않을 필요가 있었네
지상에 없는 꽃잎으로 잤네
—《시인동네》2013년 여름호
------------
최문자 / 1943년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귀 안에 슬픈 말 있네』『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울음소리 작아지다』『나무 고아원』『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사과 사이사이 새』,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가이동가이서 / 조 민 (0) | 2016.03.29 |
|---|---|
| [스크랩] 당신 (외 1편) / 함기석 (0) | 2016.03.28 |
| [스크랩] 흰 목련에 먹줄을 놓고 / 김점용 (0) | 2016.03.28 |
| [스크랩] 씽크 홀 / 이현승 (0) | 2016.03.28 |
| [스크랩] 북천 / 유홍준 (0) | 2016.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