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천
—까마귀
유홍준
어제 앉은 데 오늘 앉아 있다
지푸라기가 흩어져 있고 바람이 날아다니고
계속해서
무얼 더 먹을 게 있는지,
새카만 놈이 새카만 놈을 엎치락뒤치락 쫓아내며 쪼고 있다
전봇대는 일렬로 늘어서 있고 차들은 휑하니 지나가고
내용도 없이
나는 어제 걸었던 들길을 걸어 나간다
사랑도 없이 싸움도 없이, 까마귀야 너처럼 까만 외투를 입은 나는 오늘 하루를 보낸다
원인도 없이 내용도 없이 저 들길 끝까지 갔다가 온다
—《현대시학》2012년 9월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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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喪家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저녁의 슬하』.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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