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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림일기 (외 1편) / 하재연

문근영 2016. 3. 27. 09:05

그림일기 (외 1편)

 

   하재연

 

 

 

맨발로 공중 화장실을 서성이는

나를 못 본 척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 같다.

 

등에 멘 가방을 내려놓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다.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 마신 물이

흘러나와 꿈속을 적셨다.

 

그래서

할머니의 장례식 사진은

아주 흐리고 얇았다.

 

할머니가 키운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하늘로 하늘로만 자랐다.

 

내가 신은 양말이 짝짝이라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 죽은 거야,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인어 이야기 2

 

 

 

나의 목소리가 매일

대기에 가까워진다.

 

내 입술은

내 목소리 바깥의 것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아, 하고 입술이 동그래질 때

어,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표정들에게

단 하루씩의 사랑이 주어진다.

 

거품으로서 웃고 거품으로서 찡그리며

빗방울로 섞여드는 거품 눈물들.

 

내가 없는 육지를

내려다본다.

 

희박한 인사를 건넨다.

 

 

 

                      —시집『세계의 모든 해변처럼』(201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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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연 / 1975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라디오 데이즈』『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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