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통증의 형식 / 김희업

문근영 2016. 3. 27. 09:05

통증의 형식

 

   김희업

 

 


생각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세상에 존재하듯

아프고 안 아프고의 차이는 아픈 차이


통증은 쪼그리고 앉아 오래오래 버티다가도 정들 만하면, 어느새 날아가는 바람둥이 새


순간을 제치고 몸속 한획을 긋는, 통증

먼 길 돌고 돌아 까마득한 새벽 어디서 왔을까


종종 통성명 없이 불쑥 나타나

평소에 없던 수많은 감정을 들춰내 죽이고 살리길 거듭

이대로라면 자멸에 평안히 도달할 것인가

내가 아니었으면, 해서 몸을 떠나고 싶은 떳떳한 출가


어떤 통증은 병명 없이 발견되기도 했다는데,


높은 가지의 이파리 하나가 공중의 하루를 잠깐 날다 떨어졌다

그 위로

무지개를 새긴 문신의 통증에 대해, 고통의 화려함에 대해 하늘이 속삭이듯 고백한다


어둠을 몰아낸 형광등 빛, 바라본 동공엔 눈부신 통증이 깜박거렸다


오늘도 추운 곳에서 빙하가 녹는다 진리처럼 모순처럼

따뜻한 통증을 동반한 채


그러니 멀리 근처에도 통증은 있어

언젠가 상쾌할 거라는 가설은 미완성으로 남겨놓는다


새를 오래 품은 병색 짙던 아이는 더 버티지 못하고, 새보다 먼저 하늘로 날아갔다




                     -《창비》2013년 여름호

--------------

김희업 / 1961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칼 회고전』. hanakim3@hanmail.net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