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잠
오명선
그리하여 햇살 한 번 쬐지 못하고 여름을 보냈다
긴 장마가 여름을 다 소비한 것
발이 그려놓은 무늬가 신발이 될 때까지
새를 앉힌 말뚝이 허공이 될 때까지, 바닥에 날개를 짓이기며
무르팍으로 키워온 숲이기에
저녁은 새의 둥지를 다 가져도 펴지지 않는 등이다
누가 저 등에 얹힌 단단한 잠을 깨울 것인가
긴 생각을 지우듯,
문득 돌은 잠행하는 침묵이 아니라
앞 장을 읽고 있을 때 이미 뒷장의 결말이 책장을 덮는, 한 권의 소설이라면
온 몸으로 울음을 토해낸 저녁은
깊은 어둠이거나, 설익은 열매일 것이다
새를 물고 가는 노을이 달빛을 완성하는 동안
열리지 않는 계절은 벽으로 기댈 수 있을 거라는
마지막은 아프지 않을 거라는, 살찐 짐승들의 동정을 돼지꼬리표로 묶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대답 없는 봄의 안부를 베고 누워
죽은 새의 깃털을 빗질하는 구름의 시간, 수천 년을
걸어온 발이
한 점 바람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람이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시와 미학》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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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선 / 1965년 부산 출생. 부산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오후를 견디는 법』.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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