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크 홀
이현승
퇴근길에 보는 어둠은 거대한 동굴 같다.
불행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는 생각,
차도로 뛰어드는 아이처럼
단 한 걸음이면 우리는 벌써 도착한다.
도로와 함께 내려앉은 차량의 탑승자도
별일 없이 이 구덩이를 통과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응 지금 거의 도착했어 어쩌면 휴대전화로
오 분 뒤의 도착을 알리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갑을 놓고 와 되돌아가는 짜증스러운 오 분 탓에
누군가는 덧없이 덫을 피해 갔는지도.
여름의 하굣길 오후에 우리는 저수지로 뛰어들곤 했지만
물주름이 사라지면 산과 하늘이 깔리던 그 자리가
통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느 날
저수지의 봉인을 풀자 갇혀 있던 아이 하나가 끌려 나왔다.
들어갈 때와 다른 얼굴이었다.
있던 것이 사라진 자리가 구멍이다.
다시 단단해진 거울 위, 산을 소금쟁이가 지우며 지나가고
어린 네가 물이 들어간 귀를 털면서 뜀뛰던 고갯마루에
지금은 스핑크스라는 술집이 들어서 있다. 거기서
퇴근길에 그대로 가라앉아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이 골목을 소금쟁이처럼 지나간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삯이 있어야 한다.
이 수수께끼 같은 삶을 무슨 대가를 지불하며 건너고 있는 건지
가야 할 길은 멀고 남은 시간이 없다고 생각될 때의 목마름,
퇴근길에 보는 어둠은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 같다.
내가 들어갈 그 아가리를 보다가 나는 잠시 구멍이다.
—《문학과 사회》2013년 여름호
-------------
이현승 /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1996년 <전남일보>신춘문예 당선. 2002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당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지상에 없는 잠 / 최문자 (0) | 2016.03.28 |
|---|---|
| [스크랩] 흰 목련에 먹줄을 놓고 / 김점용 (0) | 2016.03.28 |
| [스크랩] 북천 / 유홍준 (0) | 2016.03.28 |
| [스크랩] 토끼를 만났다 / 송찬호 (0) | 2016.03.27 |
| [스크랩] 목향木香 / 김추인 (0) | 201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