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원원사지 동・서 3층 석탑(遠願寺址 東西 三層石塔)
쌍탑 전경(서→동)
전경(서→동)
전경(서→동)
동3층 석탑 전경
동3층 석탑 전경
동3층 석탑 전경
동3층 석탑 전경
동3층 석탑 탑신부
동3층 석탑의 기단부와 탑신부 조각상
동3층 석탑 동쪽 면 사천왕상
동3층 석탑 서쪽 면 사천왕상
동3층 석탑 북쪽 면 사천왕상
동3층 석탑 동쪽 면 12지상
동3층 석탑 서쪽 면 12지상
동3층 석탑 남쪽 면 12지상
동3층 석탑 북쪽 면 12지상
서3층 석탑 전경
서3층 석탑 전경
서3층 석탑 전경
서3층 석탑 탑신부
서3층 석탑의 기단부와 탑신부 조각상
서3층 석탑 동쪽 면 사천왕상
서3층 석탑 서쪽 면 사천왕상
서3층 석탑 북쪽 면 사천왕상
서3층 석탑 동쪽 면 12지상
서3층 석탑 서쪽 면 12지상
서3층 석탑 남쪽 면 12지상
서3층 석탑 북쪽 면 12지상
석등 부재
•지정 번호; 보물 1429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1리 산12-3 봉서산 원원사
•지정일; 2005년 4월 7일
•시대; 통일신라(8세기 중엽)
•분류; 석탑
•내용; 동・서 쌍탑의 경주 원원사지 동・서 3층 석탑은 원원사지(사적 46호) 안에 있다. 원원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신인종(神印宗)의 개조인 명랑법사(明郞法師)가 세운 사천왕사(四天王寺), 금광사(金光寺)와 함께 밀교 문두루 비법(文豆婁秘法)의 중심 도량이었다. 이 절은 밀교를 계승한 안혜(安慧)・낭융(朗融)・광덕(廣德)・대연(大緣) 등 4인의 대덕(大德)이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고자, 김유신(金庾信; 595~673)・김의원(金義元)・김술종(金述宗) 등이 뜻을 모아 호국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높이 약 7m의 동・서 3층 석탑은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조선 건축사론》 중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시대 일반형 3층 석탑론’에 경주 고적 보존회에서 1931년에 복원하였다.
원원사지 동・서 3층 석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으로 조성된 2중 기단의 쌍탑인 3층 석탑이며, 하층 기단 면석과 갑석(甲石) 및 상층 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 기단 갑석은 4매로 구성되어 있다. 상・하층 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탱주(撑柱; 탑의 기단 면석 사이에 세우거나 면석에 양각한 기둥 모양)와 우주(隅柱; 탑신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모양)가 있고, 하층 갑석의 상면에는 2단의 상층 기단 괴임이 있으며, 상층 갑석 4면의 각 기둥 사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12지상을 조각하였는데 이들의 머리는 짐승이나, 몸체는 평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며 옷자락이 하늘로 날리고 있는 형상이다. 1층 옥신(屋身; 몸돌) 이상 3층 옥개석까지는 모두 1매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악귀를 밟고 서 있는 자세인데 2기의 석탑 모두 남쪽에 있는 천왕상이 없어진 상태이다. 각 층 옥개석의 하면에는 5단의 옥개 받침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 괴임이 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 탑의 맨 꼭대기 지붕 바로 위에 놓여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과 앙화(仰花; 하늘로 향하고 있는 꽃 모양)가 남아 있다.
•특기 사항; 원원사지 동・서 3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표현 형식, 옥개석의 돌 다듬기 수법, 기단부와 탑신부에 구현된 양식, 석재의 조립 방법 등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하층 기단에서 12지상을 최초로 배치한 점 등 석탑의 조각 기술, 구조적 특징, 표현 양식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미술사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석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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