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원원사지(遠願寺址)
쌍탑이 보이는 근경
쌍탑이 보이는 근경
금당지 유구
금당지 유구
•지정 번호; 사적 46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1리 2 봉서산 원원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시대; 통일신라(8세기)
•분류; 절터
•내용; 경주 원원사지는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의 봉서산(鳳棲山) 자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신라 신인종(神印宗)의 개조인 명랑법사(明郞法師)가 세운 사천왕사(四天王寺), 금광사(金光寺)와 함께 밀교 문두루 비법(文豆婁秘法)의 중심 도량이었다. 이 절은 밀교를 계승한 안혜(安慧)・낭융(朗融)・광덕(廣德)・대연(大緣) 등 4인의 대덕(大德)이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고자 김유신(金庾信; 595~673)・김의원(金義元)・김술종(金述宗) 등이 뜻을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경주에서 동남쪽으로 20여 리 되는 이곳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4인 대덕의 유골을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었으므로 사영산(四靈山) 조사암(祖師巖)이라 한다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원원사는 밀교의 주요한 도량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지정 면적은 18만 4,998㎡[약 5만 6,060평]에 이른다.
원원사지의 가람은 거칠게 다듬은 직사각형 석재를 높게 쌓고 그 중앙에 돌계단이 있는 축대 위에 건물을 배치하였다. 절터에는 금당 터 등의 건물 터, 2기의 3층 석탑(보물 1429호), 석등과 승탑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석탑은 동쪽과 서쪽에 세워져 있는데 두 탑의 규모와 양식이 거의 동일하며, 일제 강점기에 복원한 것이다. 탑에는 12지신상과 사천왕상을 새겨 놓았는데 그 수준이 매우 높아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우수성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양 석탑의 사이에는 화사석(火舍石)이 없어진 석등이 있으며 동쪽 계곡에는 3기의 석종형 승탑이 있다. 서쪽 계곡에도 1기의 승탑이 있는데 이들 승탑은 모두 고려시대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특기 사항; 원원사는 명랑법사가 세운 사천왕사・금광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전기까지 밀교의 중심이 되었던 곳으로 조선 후기까지 명맥이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탑의 조각 수준으로 보아 당시 품격 있는 절이었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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