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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주 전 민애왕릉(傳 閔哀王陵)

문근영 2015. 12. 11. 02:57

경주 전 민애왕릉(傳 閔哀王陵)



전경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모습


근경


근경



 

지정 번호; 사적 190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산40

지정일; 197026

시대; 통일신라 신무왕 원년(839)

분류;

내용; 경주 전 민애왕릉은 경주 시가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의 구릉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 능은 신라 44대 임금 민애왕(재위 838~839)의 무덤이라 전하며, 이 능 남쪽 가까이에 희강왕릉(사적 220)이 있다. 민애왕은 본명이 김명(金明)이고, 대아찬(大阿湌, 5/17관등) 충공(忠恭)의 아들이다. 비는 윤용 왕후(允容王后) 김씨이다. 이홍(利弘)과 더불어 희강왕(僖康王)을 협박하여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지만 그도 역시 곧 피살되었다. 재위 기간은 왕위 쟁탈전의 혼란한 시기였으며, 별다른 치적도 남기지 못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그의 피살 사건과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다는 사실만 전할 뿐 장지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이 왕릉은 광복 이전에 두 차례나 도굴을 당하였고, 1981년에도 도굴 미수 사건이 있었다. 19849월에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봉분과 주변을 발굴 조사하여 규모를 밝히고,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지정 면적은 11,302[3,424]이다.

  전 민애왕릉은 외형상으로 볼 때 원형 봉토분(圓形封土墳)이며, 지름 12.5m, 높이 3.8m이다. 봉분의 밑부분에는 가공석으로 호석(護石; 둘레돌)을 축조하였는데 밑에 지대석(地臺石;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가공한 장대석(長臺石; 길게 다듬어 만든 돌)으로 3단으로 쌓아올린 다음 갑석(甲石)을 덮었다. 이 호석에는 또 두께 35, 길이 100~130의 단면 5각형으로 가공한 지주석 20개를 봉분의 둘레를 따라 190~290간격으로 받쳤는데 조사 결과 이는 후에 보강한 것이었다. 능 전방에는 직사각형 판석 2매로 조립한 작은 상석(床石)이 놓여 있다. 봉분 주변에 대한 조사 결과 봉분 밑 둘레 외곽으로 깊이 13, 지름 25크기의 구멍 12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파고 납석제(臘石製) 12지신상을 하나씩 묻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형태의 12지신상은 높이 10내외의 작은 것으로 무덤의 바깥쪽을 향하게 놓여졌다. 조사 당시에는 쥐돼지상 등 4가지 상만 발견되었는데 나머지는 호석 받침석이 세워질 때 파손되고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기 사항; ‘元和十年(원화십년)’명 골호(骨壺; 뼈 단지)가 이 능이 조성된 뒤에 묻혔는데 이것은 중국 당나라 때의 연호로서 815(헌덕왕 7)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능은 815년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839(민애왕 2)에 죽은 민애왕의 연대와는 맞지 않는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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