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전 민애왕릉(傳 閔哀王陵)
전경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모습
근경
근경
•지정 번호; 사적 190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산40
•지정일; 1970년 2월 6일
•시대; 통일신라 신무왕 원년(839)
•분류; 능
•내용; 경주 전 민애왕릉은 경주 시가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의 구릉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 능은 신라 44대 임금 민애왕(재위 838~839)의 무덤이라 전하며, 이 능 남쪽 가까이에 희강왕릉(사적 220호)이 있다. 민애왕은 본명이 김명(金明)이고, 대아찬(大阿湌, 5/17관등) 충공(忠恭)의 아들이다. 비는 윤용 왕후(允容王后) 김씨이다. 이홍(利弘)과 더불어 희강왕(僖康王)을 협박하여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지만 그도 역시 곧 피살되었다. 재위 기간은 왕위 쟁탈전의 혼란한 시기였으며, 별다른 치적도 남기지 못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그의 피살 사건과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다는 사실만 전할 뿐 장지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이 왕릉은 광복 이전에 두 차례나 도굴을 당하였고, 1981년에도 도굴 미수 사건이 있었다. 1984년 9월에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봉분과 주변을 발굴 조사하여 규모를 밝히고,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지정 면적은 11,302㎡[약 3,424평]이다.
전 민애왕릉은 외형상으로 볼 때 원형 봉토분(圓形封土墳)이며, 지름 12.5m, 높이 3.8m이다. 봉분의 밑부분에는 가공석으로 호석(護石; 둘레돌)을 축조하였는데 밑에 지대석(地臺石;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가공한 장대석(長臺石; 길게 다듬어 만든 돌)으로 3단으로 쌓아올린 다음 갑석(甲石)을 덮었다. 이 호석에는 또 두께 35㎝, 길이 100~130㎝의 단면 5각형으로 가공한 지주석 20개를 봉분의 둘레를 따라 190~290㎝ 간격으로 받쳤는데 조사 결과 이는 후에 보강한 것이었다. 능 전방에는 직사각형 판석 2매로 조립한 작은 상석(床石)이 놓여 있다. 봉분 주변에 대한 조사 결과 봉분 밑 둘레 외곽으로 깊이 13㎝, 지름 25㎝ 크기의 구멍 12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파고 납석제(臘石製) 12지신상을 하나씩 묻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형태의 12지신상은 높이 10㎝ 내외의 작은 것으로 무덤의 바깥쪽을 향하게 놓여졌다. 조사 당시에는 쥐・소・닭・돼지상 등 4가지 상만 발견되었는데 나머지는 호석 받침석이 세워질 때 파손되고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기 사항; ‘元和十年(원화십년)’명 골호(骨壺; 뼈 단지)가 이 능이 조성된 뒤에 묻혔는데 이것은 중국 당나라 때의 연호로서 815년(헌덕왕 7)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능은 815년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839년(민애왕 2)에 죽은 민애왕의 연대와는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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