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양동 수운정(良洞 水雲亭)

문근영 2015. 12. 3. 00:25

양동 수운정(良洞 水雲亭)



전경


전경


대청에서 내다 본 풍경


사주문에서 바라 본 풍경




대청 내부


대청 내부


온돌방


내부 천장


상부 구조


행랑채


지정 번호; 중요민속문화재 80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안길 45-20(양동리 313)

지정일; 1979123

시대; 조선 선조 15(1582) 무렵

분류; 가옥[기와집]

내용; 양동 수운정은 경주시 강동면 양동 마을(중요민속문화재 189)의 월성 손씨(月城孫氏)와 여강 이씨(驪江李氏)의 동족 마을로 넓은 안강 평야(安康平野)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정자는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 ) 선생의 손자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 1544~1600) 선생이 세운 것으로 이름은 수청 운허(水淸雲虛; 물과 같이 맑고 구름과 같이 허무하다)의 뜻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손중돈은 호가 우재, 자는 대발(大發)로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인이다. 1489(성종 20)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봉교(藝文館 奉敎; 7)를 지냈으며, 공조예조 참판(參判; 2)을 역임하고, 1517(중종 12) 성절사(聖節使)로 중국 명에 다녀왔다. 그 후 공조 판서(工曹 判書; 2)도승지(都承旨; 3)대사간(大司諫; 3)우참찬(右參贊; 2) 등을 역임하였다. 중종(中宗) 때 청백리(淸白吏)에 뽑혔고, 경주 동강서원(東江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1582(선조 15)경에 지은 건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영정을 이곳에 모셔 난을 피하였다고 전한다.

  수운정은 사랑채[정자]와 행랑채의 2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향은 서남쪽의 안강 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정자는 정면 3측면 2칸 크기로 대청과 방으로 꾸몄고 앞쪽에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정자 뒤편으로 있는 행랑채는 마루방 1칸과 행랑방 1칸을 만들어 놓았다.

특기 사항; 양동에 있는 여러 정자 중 자리가 좋고 경치가 가장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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