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8년 중앙일보 당선작

문근영 2015. 4. 4. 12:16

심사평 : 최동호 , 이시영


조은길씨의 '3월'은 우리네 삶의 신산을 어느 정도 겪어낸 사람의 체험과 생활의 따뜻한 정서가 뭉클하게 배어있는 시다. 상상의 폭이 좁고 너무 여성적인 것이 흠이지만 언어들이 시 전체를 향해 꽉 짜인 밀도를 얻고 있으며 무엇보다 일관된 시적 절정을 향해 고개를 넘고 또한 적절히 가파른 숨을 몰아쉴 줄 아는 그 리듬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거기 묘사된 생활의 세목들은 또 얼마나 친숙하며 따사로운가.
3월의 배냇잠 구석구석까지를 훑어내는 그 시적 촉각이 예민하면서도 신선하다. "나뭇껍질 같은 손으로 툭툭 좌판을 털면 울컥/ 일어나는 젖비린내"를 맡을 줄 아는 이 시인의 건강한 서정을 당선작으로 민다.
 

당선시 : 3월


 
 
조은길
1955년 경남 마산출생, 방송대 국문과 졸업

 
 
3월
 
 
벚나무 검은 껍질을 뚫고
갓 태어난 젖빛 꽃망울들 따뜻하다
햇살에 안겨 배냇잠 자는 모습 보면
나는 문득 대중 목욕탕이 그리워진다
뽀오얀 수중기 속에
스스럼없이 발가벗은 여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서로서로 등도 밀어주고 요구르트도 나누어 마시며
볼록하거나 이미 홀쭉해진 젖가슴이거나
엉덩이거나 검은 음모에 덮여 있는
그 위대한 생산의 집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을 시장 구석자리에서 날마다 생선을 파는
생선 비린내보다
니코틴 내가 더 지독한 늙은 여자의
물간 생선을 떨이해 주고 싶다
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툭툭 좌판을 털면 울컥
일어나는 젖비린내 아--
어머니
어두운 마루에 허겁지겁 행상 보따리를 내려놓고
퉁퉁 불어 푸릇푸릇 핏줄이 불거진
젖을 물리시던 어머니
 
3월 구석구석마다 젖내가...... 어머니
그립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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