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8년 조선일보 당선작

문근영 2015. 4. 2. 17:18

심사평 : 정현종 , 김주연


당선작인 이종수씨의 '장닭공화국'은 닭으로 비유된 현실, 특히 정치현실을 다룬 일종의 알레고리 시인데,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재미와 고급 유머의 세계가 눈부시다.
그것은 고발이나 풍자, 난해한 상징과는 또다른 방법 위에 서서, 섬세한 관찰의 도움을 받고 있는 현실비판의 시이다. 이씨의 다른 응모작들도 비교적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 젊음의 패기가 첨가된다면 아주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선시 : 장닭공화국

 
 
이종수
1966년 전남벌교 출생, 청주대 국문과 졸업

 
장닭공화국

 
새벽녘 목청을 다듬으며
칠성무당벌레마냥 높은 곳에 오른다
누구나 아침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까
잠깐 벼슬을 쭈뼛거리다가
길게 한 소리 뽑는다
높은 곳에 올라보니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가 거느린 암탉들처럼 멍청해 보인다
폐계 천원 폐계 천원 한다는 양계장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튀김닭으로 팔려 가고 닭도리탕감으로 팔려가는
저 수백 단으로 쌓인 유통의 나라를 굽어보며
그레코로만 선수처럼 발바닥을 닦아본다
 
아침이 온다고 다 같은 아침이 아닌데
아침만 질러놓고 보면 이 나라 모두
아침 빗자루질 같을 거라는 막연한 몽상을 하며
지난밤 닭장 횃대에서 자다
쥐들에게 뜯겨 살이 다 드러난 암탉들을
거느리고 한껏 목을 꼿꼿이 세운다.
양계장에서 팔려온 암탉들 끌고 운동도 시켜야지
그래야 살이 맛있어지지
자, 이제 휴게소로 나가 볼까
존경하는 주인 아저씨,
벌써 일어나 나를 보러 오는 걸 잘 봐
내가 얼마나 신임받는 줄
조금 있다가 보면 알게 될 거야
몸 생각한다고 촌닭, 토종닭 아니면 먹질 않는
사람들의 머리속이나마 꽉 채워주려면
꼭 내 연기가 필요하지 단칼에 쓰러져 죽는 시늉하는
일품 연기를, 연기가 끝나면 양계장 닭으로 바꿔치기 하는
아저씨도 일품이지
어차피 못쓰는 날갯죽지 조금 아픈들 대수로냐
휴게소 가든 벼슬살이 이만하면 좀 좋아
휴계소 가든 닭도리탕 정치하는 맛에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재미말이야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