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8년 세계일보 당선작

문근영 2015. 4. 2. 17:18

심사평 : 김광규 , 김재홍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대부분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것들이었다. 다만 지나치게 유행적인 시풍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거나 신춘문예를 겨냥해 의도적으로 제작한 시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신해욱의 '북극성', '나비' 등은 개성의 신선함이 특장으로 여겨졌다.
새삼 말할 것 없이 시정신이란 창조정신이 생명이며, 시는 가장 높은 인간정신의 움직임을 창조적 언어, 개성적인 언어로 형상화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유의하여 당선자는 앞으로 더욱 창조적인 개성과 품격있는 시세계를 형성해가기 위해 진력해야 할 의무와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
 

당선시 : 나비 / 북극성


 
 
신해욱
1974년 춘천출생, 한림대학교 국문과 졸업

 
 
나비
 
바람 한가득 입안에 머금고
숨을 멈춘 햇살
아래, 보드랍게 날고 있는
붉은점모시나비
온통 날개로만 살아가는
그 사뿐한 몸짓을 시샘하다가, 아니
어쩌면 생이 저렇게 가벼워서야 되리
혀를 차려다가
문득 저 날개도
땅으로 팽팽하게 끌리는 물체임을
깨닫는다
 
이 가벼움은
죽음 앞에 선 전쟁용사의 굳은 입술
찢길 듯 말 듯 위태로운 날개
무쇠갑온인 양 차리고
투명한 공기 속에 몸을 숨긴
교활한 지구의 중력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맴돌던 꽃이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벼웁!게 날아 다니는 나비
의 날개 속엔
돌로 굳은 눈물방울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다
 
 

북극성
--팔백광년, 그것은 거리를 넘어선 그리움의 공간이다

팔백년이라나
우리 서로 마주하기 위해
빛이 날아온 먼 길은
 
우린 그렇게 눈물겹게
만나긴 만난 것인데
그대 그 맑은 빛은
팔백년 전 어느 날의 앳된 눈동자
그대가 마주한 얼굴은
서경별곡 부르던 눈물의 여인
대동강 푸른 물이 된
두어렁셩, 나의 前生이리
 
팔백년 전의 어느 길목쯤
스치우는 옷소매에
눈웃음만 가볍게 묻히고
그대는 나를 향해
나는 그대를 향해
바쁜 걸음 걸음 재촉했을 우리
그 길목의 나무둥치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지친 몸 달래어나 볼 것을,
오는 밤에사 마주하긴 마주한 우리는
먼 옛날 까마득히 사라진
어슴푸레한 잔영(殘影)인 걸
 
아무리 발돋움해 보아도
팔백 번의 겨울을 보내고야
나의 언덕에 다가올 그대
오늘밤의 얼굴, 안타까움만
목구멍 가득히 넘쳐올라
달맞이 꽃잎 위에 떨어지고
이 먼 길의 저쪽 끝자락엔
들을 수 없는 북극성, 그대의
아득한 숨소리.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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