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최승자 , 이남호
여정의 시들은 강렬하다. 그 강렬함은 아마도 체험의 강렬함에서 오는 듯하다. 여정의 시들은 형식이 오히려 서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익은 내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언어나 형식에 대한 성실한 천착이 부족한 듯하면서도 내용과 상상력이 언어나 형식을 압도해버리는 측면이 있다.
여정이 당선된 이유의 대부분은 '자모의 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모의 검' 한 편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여정의 다른 작품 또는 앞으로의 활동을 지켜봐주기를 부탁드린다. 당선자의 문운을 빈다.
당선시 : 자모의 검
여정
1970년 대구출생, 계명전문대 경영학과
자모의 검
혹자가 말하길, 입속은 자객들의 은신처란다. 그들이 즐겨 쓰는 무기는 '영혼을 베는 보검'으로 전해오는 자모의 검이란다. 을씨년스런 날이면 자객들은 검은 말을 타고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어느 심장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단다. 천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 어느 귓가에 닿으면 그들은 어김없이 이성의 칼집을 벗어던지고 자모의 검을 빼어든단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한 영혼의 목을 뎅거덩 자르고 나면 자객들은 섬뜩한 미소로 조위금을 전하고 또 다른 심장을 향해 말 달려간단다. 그날에 귀머거리는 복 있을진저, 자객들의 불문율에 있는 '귀머거리의 목은 칠 수 없다'는 조항에 따름이라.
혹자가 말하길, 자모의 검에 찔린 사람들은 귀부터 썩어간단다. 귀가 썩고 뇌가 썩고, 썩고 썩어 생긴 가슴의 커다란 구멍으로 혹한기의 바람이 불어대고 수많은 까마귀떼의 날개짓이 장대비처럼 내린단다. 그 부리에 생살이 뜯기고 새하얀 뼈를 갉히며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단다. 그날에 수다쟁이는 화 있을진저, 더 많은 까마귀떼를 불러들임이라.
자객들의 말발굽 소리 요란한 날이면 너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손으로 귀부터 틀어막고 묵직한 바위 뒤에 숨어 최대한 몸을 낮춰라. 그리하면 자객들이 탄 검은 말들이 너희를 비켜가리니, 자모의 검일망정 결코 너희를 해(害)치 못하리라. 귀 있는 자들은 들어라. 이 말로 더불어 너희가 그날에 '복 닫았다' 일컬음을 받을지니, 부디 그날에 너희에게 복 있을진저, 혹자의 말이니라.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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