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신경림 , 김종해
예심을 거쳐 결심으로 넘어온 응모작들의 수준이 예년에 비해 높았다는 것이 전체적인 소감이다. 당선작으로 뽑힌 송주성의 '나무에는 꽃이 피고'는 시쓰기의 새로움과 시 읽는 즐거움이 함께 담겨 있다. 능청스러울 정도의 긴 사설과 호흡이 긴 산문문장이 시읽기의 즐거움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이미지의 전환장치가 돋보인다. 화자의 삶의 미로와 봄에 찾아오는 꽃의 미로가 서로 오버랩하는 시적 장치가 그것이다. 이 시인에게 거는 기대는 시쓰기의 새로움이다.
당선시 : 나무에는 꽃이 피고
송주성
1965년 부산출생, 건국대 불문과 박사과정
나무에는 꽃이 피고
언젠가 아주 잠깐 살았던 봉천 몇동이더라 집 보러 아니 방보러 가던 길에서 나는 얼마나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택시 기사는 여기라 하고 가겟집 주인은 돌아서 두 정거장 더 내려가라 하고 하교길 아이한테 물어보면 자기도 이사온 지 얼마 안돼 모른다고 하던
봉천동 같은
봉천동 같은
여기저기 시장만 해도 닷새장 구포장보담 몇 배나 크던 그 어디어디에 주인집 여자는 암호 같은 단어들로 정약국 돌아 쌀집 옆으로 어떻게 어떻게 오라고 하고
고무줄 뛰던 계집애들은 이쪽인가 저쪽인가 하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골목 지나 공터에 섰을 때 그 막막한 가운데
봉천동 같은
봉천동 같은
나는 생각했다 그때 마치 숨겨져오던 진실을 발견하듯 어쩌면 봉천동 사람들은 제 사는 곳이 어디인지 정말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소스라치게 생각했었던 봉천동 같은
여기
고장난 우주 정거장 미르호의 창 밖 같은
문과대학 2층 복도의 창 밖을 내다보면
누구에게 길을 물어서 집을 찾아왔는지
나무에는 꽃이 대문을 열고 쑥 들어온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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