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황동규 , 김광규
응모작품이 전반적으로 높은 질적 수준을 보여 주었고, 양적으로도 시에 대한 정열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풍성했다. 특히 수십 편의 작품을 한꺼번에 투고한 응모자들도 상당히 있었는데, 이러한 물량공세는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기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몇 편을 정선하여 투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화경'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체험을 진솔하게 형상화한 점이 좋았고, 자기 생각의 깊이를 평이한 언어로 특색 있게 나타냈다. 이 작품에 덧붙여 '물방울 별'을 더 뽑은 까닭은 이 시인의 다양한 역량을 보여 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오랫동안 자기의 목소리를 다듬어 온 것으로 보이는 이 시인이 앞으로도 남의 눈치나 유행에 구애받지 말고 자기의 시 세계를 펼쳐 나가기 바란다.
당선시 : 만화경 / 물방울 별
김용길
1956년 서울출생
만화경
아이와 색종이를 오리면서
도화지에 붙이며 그림을 만들면서
그림 뒤로 사라져 버리는 색종이의 뒷면을 생각했다
울긋불긋 빛나는 이 세상도
색종이의 뒷면 같은 무엇이 받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뒷면이 사라지면 그림은 남을 수 있을까
거대한 이 도시는
뒷면에서 뼈를 세운 노동이 팔 뻗쳐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이 만큼의 생활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떠받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문에서 종이가 없어지면 글자들은 어떻게 떠오르나
우리의 육신이 사라지면 영혼이 그런 색깔로 떠오르나
잘라서 남는 종이들은 왜 쓰레기로 버리면서
우리들의 삶의 어느 부분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게 아닐까
버려지지 않고
뒤에서 떠받들지 않고 사는 세상이 없을까
문득 궁리하다가 색종이를 잘게 잘랐다
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아빠 무어야 한다
유리를 몇 개 주어다 만화경을 만들었다
안팎이 없고
버려지지 않는 세계가 이루어졌다
아이가 좋아서 깡총깡총거린다
물방울 별
가만히 지구를 두들겨 본다
땡 땡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
발 밑에 내려다본다 밑을
자식 뭘 보냐
씩 웃는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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