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박두진 , 조병화
예심을 거쳐서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이 20명분 120여 편이었다. 이 중에서 다시 최종까지 논의된 작품이 4편이었다. 당선작 '나무를 꿈꾸며'는 일단 서정시가 갖춰야 할 정서적 기반과 거기에 따르는 유연한 표현태가 청순하고 섬세하여 상당한 공감력을 내포하고 있어, 앞으로의 기대를 갖게 했다.
당선시 : 나무를 꿈꾸며
전원책
1953년 울산 출생, 경희대 법대 졸업
나무를 꿈꾸며
1
땅 끝에 모여 사는 나무들은
밤이면 걸어다닌다.
설레이는 별들 물어린 눈을 뜨면
누가 먼길 떠나는 것일까,
때 이르게 어리는 달무리
이웃들이 등 내달아 길 밝히고
나무들도 컴컴한 숲을 따라 걷는다.
아무도 잠깨어 슬퍼하지 않는 밤
반짝이는 햇빛 푸른 하늘 사람이 그리운
나무들은 함부로 노래하고 운다.
은빛 빛나는 톱날 같은 바람이
우루루 여기저기 몰려다니다
제 살을 베어내 머얼리 날려보내며
나무 밑을 서성일 때
수액을 떨구는 은박의 그림자와
긴 팔을 가진 나무가
"쉬잇 나무꾼이다" 속삭이며
어린 잎을 잠재운다.
가만히 숲을 흐르는 나무들의 귀엣말
은밀하게 퍼져가는 전갈을
차고 슬픈 시간에
그루터기에 쌓여 가는 달빛이 듣고 있다.
"곧 무서리가 내리겠어" 대단한 걱정거리를 두런대면서
2
바람마다 별들이 떨고 있다.
묵묵히 자라나는 내 이웃의 나무
밤이면 잎을 틔우는 나무여.
나도 수 없는 푸른 잎을 매단다.
저물도록 땅을 파고
아득하게 흐르던 순한 강물을 당겨
머언 땅끝까지
캄캄히 잠든 뿌리가 깨어나고
나는 함부로 노래하고 운다.
알고 있을까, 나에게는 누울 곳이 없어
맑은 날에 부끄럽게 달을 만나고
아직 갚을 빚 많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밤마다 손질하는 것이
그저 바람이며,
제 살을 베어내 머얼리 날려 보내는 것을
글세,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건너뛰는 마른 번개와
그 일순의 광채 뒤에 숨은
기인 고뇌의 울음이
최후의 탄사처럼
천천히 정수리로 떨어져 내림을.
나에겐 듣는 귀가 없어
저 기막힌 인과를 짐작하고 운다.
새벽에 꽃 한 송이 가슴에 달고
밤새 자라 있는 나무이기 위해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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