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김종길 , 정진규
김유석의 '신월기계화단지'를 당선작으로 민 이유는 이 작품이 다른 시들에 비해서 "진정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표방하는 바의 표현구조나 시적 인식은 매우 다양하고 심층적인 요소를 지니고는 있으나, 자신들도 모르게 일종의 "하찮게 하기"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문학적 해학성이나 이른바 해체 의식으로 수용하기엔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 그것은 이 시대에 억압된 자기모멸이나 자조의 형국에 더 크게 머무르고 있다. 시가 본질적으로 지녀야 할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지 못하다. 바로 이러함을 극복하고 있는 세계를 "진정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선작으로 뽑은 이 작품도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경계해야 할 요인들을 내포하고 있다. 기계와 인간이라는 대립적인 의미구조를 통해 설정하고 있는 시적 공간을 보다 새롭게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날카로운 자기투사가 있었어야 했다. 오늘의 결핍을 지난날의 것으로만 치유코자 하는 인식은 복고조의 어조를 낳고 있다.
당선시 : 신월기계화단지
김유석
1960년 전북 김제 출생, 전북대 문리대 졸업
신월기계화단지
1.
숨가쁜 아침이 박명의 들판에
고함소리로 몰리고 있다
논두렁마다 잠의 젖니에 물려 있는 풀꽃들은
따스한 체온 굴러 떨어지는 이슬의 몸살이 아프다
수십년 세월을 갈아온 늙은 쟁기꾼의
이랑 같은 주름살 무심히 밟고 가는
바퀴 밑에 깔린 녹슬은 보습 하나
비켜 선 황소 눈망울에 시름이 깊다
자그만 나사 하나만 풀려도 드센 고집을 부려
사람의 코뚜레를 뚫기도 하지만
한 필지쯤이야 해장거리
구발산 힘을 뽑아 온 봄을 갈묻이하는
39마력 짜리 포드 아, 아니 대동 트랙터
저것들은 기억할 수 있을까
황소 목울음 끝에 매달리는 농부가 한 소절을
앞세워 돌아오던 풍경소리를
2
갈비뼈 부러진 정읍댁 지붕 위에
마늘쪽 같은 낮달이 걸려 있다
오래된 문패처럼
마당귀에 대추나무 홀로 여위고 있다
들대에 서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어둠에 젖어 있는 고샅길
물집 터진 흰 고무신짝 하나 무심히 떠올 뿐
조금만 곁눈을 주어도 목이 메어
낯빛으로도 다 못 감추는 사랑
허물없이 국수사발로 말아 건네던 사람
기러기 떼처럼 늘어서서 띠앗머리 좋게 모내던
그 모잡이들 다 어디로 가고
모춤 위로 문득문득 떠오르는 얼굴을 감춰서
장승같은 이 외로움이 가려질까
꺽어서 풀빛 그리움이 그만 지워질까
무심한 기계도 멀찍이 받쳐두고
흙빛으로 얼굴을 내미는 외로움에
풋마늘을 찍어가며 혼자 찬밥을 먹는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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