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신경림 , 김주연
당선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는 그의 다른 작품 '지리산 고로쇠나무'와 함께 드물게 보는 수작이다. 서울에 사는 가난한 신혼부부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 시에는 시가 갖춰야 할 기본적 요소, 예컨대 올바른 현실의식과 신선한 감수성 그리고 언어의 긴장을 향한 절제의 노력이 알맞게 고루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감동적인 것은 시의 덕목일 수 있는 것까지 새로 마련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 시는 한 개인과 집단의 가난한 삶이 가정이라는 만남 속에서 뼈아픈 실상으로 나타나면서도 그것이 동시에 바로 그 가정 혹은 사랑을 통해 고급스런 유머로 극복된다. 현실에 대한 비판과 현실의 초월이라는 힘든 문학의 이중 기능이 이 시에서 아름답게 구현되고 있다. 특히 역동적인 상상력을 통해 매우 실감 있는 시적 공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이 새로운 시인에게 앞으로 많은 것을 기대케 한다.
당선시 :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박라연
1951년 전남 보성 출생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네
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새벽녘 우리 낮은 창문가엔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거나 별 두서넛
이 다투어 빛나고 있었다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어도 좋았을 우리
의 사랑방에서 꽃씨 봉지랑 청색 도포랑 한 땀 한 땀 땀흘려 깁고
있지만 우리 사랑 살아서 앞마당 대추나무에 뜨겁게 열리지만
장안의 앉은뱅이 저울은 꿈쩍도 않는다 오직 혼수며 가문이며
비단 금침만 뒤우뚱거릴 뿐 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서울의 산 일번
지에 떠도는 옛날 이야기 그대 사랑할 온달이 없으므로 더 더욱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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